[@뉴스룸/김유영]‘시간 자결권’을 수호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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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부행장 시절 매일 아침 회의를 선 채로 진행했다. 이런 자세는 긴장감을 가져다줬고, 그 결과 쓸데없는 이야기는 생략하게 됐다고 한다. ‘스탠딩 회의’는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권 행장은 “회의 시간을 확 줄여 항상 오후 7시에 퇴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글로벌 기업의 여성 지사장인 A 씨는 최근 퇴근 후 TV를 아예 보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다. 스마트폰과 PC를 들여다보는 일도 최소화했다. 그 대신 아이와 놀아 주거나 책을 읽고 요리를 하는 등의 ‘양질의 시간(Quality Time)’을 보내기로 했다.

경영 전략의 대가인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전략이란 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선순위를 둬서 하지 않을 일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라는 것이다. 이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도 해당한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계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많은 직장인이 스스로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지식 강연인 테드(TED)의 인기 연사로 꼽히는 칼 오너리는 ‘시간 자결권(Time Autonom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자유롭고 충만하게 자신의 시간을 쓸 권리를 일컫는다. 그는 “시간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여유 있고 창의적이며 생산성이 높은 동시에 행복감도 높다”고 강조한다.

기자는 네덜란드에 갔을 때 시간 자결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국내 기업의 현지 법인에서 한국인 직원들은 늘 야근을 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시차가 8시간 벌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현지 직원들은 오후 5, 6시면 ‘칼 퇴근’을 했다. “퇴근 시간 이후는 ‘나의 시간’이다. 상사나 그 누구도 나의 시간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는 게 현지 직원들의 말이었다. 네덜란드 직장인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퇴근 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제2의 하루’를 시작했다.

그들은 한국 기준으로 ‘강심장 직장인’인데도 한국 직장인보다 성과가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네덜란드인의 시간당 부가가치 생산액(노동생산성)은 60.4달러로 한국인(30.4달러)의 두 배에 이른다.

물론 개인의 노력만으로 시간 자결권을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 일하는 시간보다 업무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ROWE·Result Only Work Environment)가 확산되어야 하고, ‘시간 빈곤자’인 워킹맘들을 위해 어린이집을 설치하는 등 제도적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체 혁신을 통해 생산성 등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없다면 시간 자결권도 헛구호에 그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하지 않아서, 해야 할 거 같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새해에도 여전히 불안하다면, 일단 당신에게 권한다. 제도 개선을 줄기차게 요구하되, 개인 스스로도 시간 자결권을 염두에 두고 살아 보면 어떨까. 오늘의 당신이 어제의 당신보다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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