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이사로… 속물로… 최근엔 주변인에 주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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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화 속 ‘모래시계 세대’는

영화 ‘바람난 가족’
영화 ‘바람난 가족’
소설과 영화 속에서 요즘의 ‘모래시계 세대’ 또는 ‘386세대’는 그리 매력적인 주인공이나 대상은 아니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등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의 저항뿐 아니라 그 이후의 지리멸렬함까지, ‘이미 잔치가 끝났기’ 때문이다.

창작자 입장에선 마치 청순하게 데뷔한 걸그룹을 섹시한 이미지로 바꿔 성공시킨 뒤 ‘이젠 어떻게 변신시켜야 하나’를 고민하는 연예기획사 사장들의 심정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소설에선 1980년대의 기억을 곱씹는 후일담 소설이 이따금 나온다. 이들 소설은 한때 역사의 주체에서 일상의 장삼이사로 전락한 이들의 화려한 추억과 씁쓸한 현재를 담았다.

‘레가토’
‘레가토’
후일담 소설 계보의 마지막 자락을 차지하는 ‘레가토’(권여선·2012년)는 1980년대 농활과 데모를 거치며 운동권이 돼 가는 청년들의 모습과 유명 정치인, 출판사 사장, 국회의원 보좌관 등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열정을 빛내던 그들은 “늙은 인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럭저럭 조달하며 사는 데 익숙해진 존재”가 돼 버렸다.

‘차남들의 세계사’
‘차남들의 세계사’
최근 소설에서는 386세대와 동시대를 살았지만 소외됐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차남들의 세계사’(이기호·2014년)의 나복만, ‘투명인간’(성석제·2014년)의 김만수 등이다. 이들은 역사의 주체가 아닌 ‘고통과 슬픔의 주인공’이다. 문학평론가 서희원 씨는 “경제개발과 군사정권의 희생양이지만 민주화의 주역들은 아닌 인물들, 당대의 민중이지만 주목받지 못한 채 형벌처럼 가난한 노동을 이어왔던 인물들이 최근 소설에 의해 비로소 이름을 얻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영화에서도 ‘속물이 돼 버린’ 386세대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매력이 없다. ‘속물 386’을 다룬 영화 중 가장 알려진 최근작이 ‘바람난 가족’(2003년)일 정도다.

반면 386세대가 이상을 잃지 않았던, 즉 주인공의 매력을 갖고 있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종종 등장한다. 1000만 관객 영화 ‘변호인’(2013년)을 비롯해 ‘화려한 휴가’(2007년) ‘오래된 정원’(2007년)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가 386세대의 ‘이후 모습’을 다룰 때도 ‘괴물’(2006년) 속 ‘남일’(박해일)처럼 ‘도바리’(도망)를 치거나 화염병을 던지는 80년대식 모습에서 매력을 얻는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386세대가 자본가, 소시민, 룸펜 등으로 변화한 뒤에 주역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변화 이후의 이 세대가 마주한 사회를 제 가치대로 조명하기에는 성찰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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