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촉촉한 한국형 미라는 ‘잘 보존된 시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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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라/전승민 지음·김한겸 감수/252쪽·1만3500원·휴먼앤북스

1922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투탕카멘 왕의 미라는 저주로 유명하다. 당시 피라미드를 발굴한 고고학자 대부분이 일찍 사망했기 때문이다. 과학 기법을 동원해 2006년 조사를 벌인 결과 저주가 아닌 피라미드 내 미생물에 감염된 것이 사망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책은 한국 미라가 생성된 과학적 원인을 비롯해 역사, 문화적 배경을 담았다. 발굴 현장부터 부검 등 실험실 및 현장 스케치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준다.

다행히 한국 미라는 ‘저주’가 없다. 보존 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미라라기 보단 잘 보존된 시체”라고 말할 정도. 해외 미라는 바싹 말라 버렸거나 꽁꽁 언 채 발견됐지만 한국 미라는 ‘반건조 오징어’처럼 촉촉하다는 것. 그 덕에 세포의 형태가 유지돼 조직검사가 가능하다. 인체 수분에 반응하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도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생활상도 엿볼 수 있다. 조직검사 결과 16세기 한국 미라의 장에서 간흡충이 발견됐는데 이는 민물고기 회를 즐겨 먹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미라는 왜 상태가 좋을까? 회곽묘(灰槨墓)에 답이 있다. 우선 나무 관에 시신을 넣는다. 나무관을 다시 나무로 만든 목곽에 넣는다. 목곽을 땅에 넣은 후 목곽 주변에 횟가루와 모래, 황토를 섞은 물을 붓는다. 회가 돌처럼 굳어져 공기가 완벽히 차단되면 마치 통조림이 썩지 않는 것처럼 미라가 만들어진다. 횟가루와 물이 만나면 화학작용으로 열이 난다. 그래서 관 속 온도는 최대 149도까지 올라가면서 세균이 모두 죽는다. 한국 미라의 뇌 조직, 신경세포 등이 그대로 보전되는 이유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한국 미라#미라#저주#회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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