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정훈]신정아와 조현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정훈 사회부장
김정훈 사회부장
노무현 대통령 재임 때 대통령의 해외순방 전세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쟁입찰을 통해 결정됐지만 사실상 번갈아가며 이른바 ‘코드원’으로 채택됐다. 이 때문에 해외순방이 끝나고 돌아오면 장시간 전세기에 탑승했던 청와대 참모진이나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두 항공사의 기내 서비스를 비교하는 뒷담화가 으레 있곤 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타는 비행기여서 전세기에는 해당 항공사의 회장이나 고위 임원이 반드시 동승했다. 2004년 대한항공이 전세기로 채택됐던 순방 때였다. 동승한 대한항공의 고위 임원이 비행기 안을 한 바퀴 돌면서 탑승객들에게 애로사항은 없는지 살폈다. 한 기자가 기내식을 먹는데 백김치가 나온 것을 거론하면서 이 고위 임원에게 “빨간 김치 좀 달라”고 요청했다. 그 기자의 용감한 건의에 침묵하고 있던 모두가 오랜만에 빨간 김치 좀 먹어보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이 고위 임원은 “빨간 김치를 내놓으면 비행기의 내벽에 냄새 입자가 배게 된다. 다음에 이 비행기를 외국인들도 타게 될 텐데 혐오감을 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곤 승무원들에게 “다음 식사 때 백김치를 더 갖다 드리라”고 지시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의아했다. 이미 당시만 해도 에어프랑스 등 외국 국적 항공사들도 한국 노선에선 매운 냄새가 진동하는 컵라면과 김치를 내놓았고, 오히려 한국인들보다는 외국인 탑승객들이 호기심으로 너도나도 컵라면과 김치를 달라고 해 먹었다.

후발 주자였던 아시아나항공은 상대적으로 전세기 서비스에 총력을 기울였다. 대한항공이 오랫동안 유일한 국적기 항공사로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비교적 세련되고 품격 있는 서비스에 치중했다면, 아시아나항공은 그만 좀 귀찮게 했으면 싶을 정도로 탑승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면서 정성을 다하는 콘셉트로 기내 서비스에 나섰다. 아시아나항공 전세기를 타고 동남아 순방을 갔을 때 한 청와대 참모진이 승무원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냉면이 정말 먹고 싶다”고 한 일이 있었다. 승무원이 “죄송한데 냉면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그걸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전세기에 올랐을 때 이 승무원은 그 참모진에게 냉면 대용으로 즉석 비빔면을 구해와 얼음을 띄워 건넸다. 이 일화는 한동안 화제가 됐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오늘 검찰에 불려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된다. 아마도 조 전 부사장은 서울서부지검 8층의 특별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7년 전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씨가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됐던 곳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도 이 조사실을 거쳐 간 유력 인사들이다.

공교롭게도 2007년 신 씨를 조사했던 검사는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1과장으로 서울서부지검에 파견 나왔던 문무일 서울서부지검장이다. 검찰 지휘부와 수사팀 내에서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사안이라는 점에서 조 전 부사장을 가볍게 처벌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 여론은 대한항공 측의 조직적 은폐는 물론이고 국토교통부와 항공사의 유착관계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검찰 수사가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적폐를 도려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누차 강조해온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닐까.

김정훈 사회부장 jnghn@donga.com
#신정아#조현아#기내 서비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