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고급人力 외국인 유학생들, 국내 정착 막는 ‘걸림돌’에 분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긴 이름 入力 안돼 대기업 入社 포기… 창업 위해 휴학땐 不法체류자 전락”

“인터넷으로 제출하는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 지원서에서 긴 이름(8글자)이 입력이 안 돼 지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세대 상경계열 4학년에 재학 중이며 한국어와 문화에 익숙한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A 씨(25)는 “한국 사회는 다문화, 한국 기업은 글로벌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이미 한국에 적응한 외국인도 제대로 활용할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외국인 유학생은 휴학도 마음대로 못해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가 5만 명 수준에 이르면서 외국인 인재 유치 과정에서 이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 유학생들은 다른 외국인들보다 훨씬 쉽게 한국 직장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며 “인구 감소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이 적극적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는 인적 자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들 중 상당수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외국인 유학생들을 ‘예비 인적 자원’으로 활용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꼬집는다. 특히 정부의 외국인 유학생 관리제도부터 문제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 상경계열 대학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B 씨(27)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창업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국의 교육 콘텐츠를 판매하는 사업을 진행해보고 싶은 것.

하지만 B 씨는 시장조사, 사업 파트너 발굴, 투자 유치 등을 위해 한 학기 휴학하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다. 휴학을 하면 외국인 유학생 신분이 보장되지 않으며 2주 안에 출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학생들도 취업이나 창업을 위해 수차례 휴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는 휴학을 허용하지 않는 건 비현실적인 조치”라며 “지금 상황에선 외국인 유학생이 제대로 취업이나 창업 준비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창업도 가시밭길

정부가 국내 ‘일자리 늘리기’ 등을 위해 지난해 10월 도입한 ‘외국인 창업 비자 제도’도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비자를 받으려면 학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으로서 지식재산권(특허 등)을 보유했거나 이에 준하는 기술력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 출신으로 한국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최근 국내에서 창업을 준비 중인 C 씨는 “창업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지식재산권을 요구하고, 학력 제한을 두는 건 다소 지나친 자격 조건”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창업 지원 관련 정보 부족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학계열 대학원에 다니는 인도네시아인 유학생 D 씨(27)는 한국에서 잠시 창업을 생각했지만 고민 끝에 고국에 있는 글로벌 기업의 지사에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창업 비자를 받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외국어로 된 창업 정보가 터무니 없이 부족해 기본적인 준비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외국인 창업이 활성화되려면 신원이 검증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는 창업을 위한 휴학 등을 허용해주는 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최상위권 대학의 이공계 전공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특화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위스는 이민제도가 까다롭지만 외국인 유학생의 창업 지원에는 파격적이다. 취리히연방공대(ETH)를 비롯해 최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 유학생들 중 창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혁신진흥청(CTI)이 중심이 돼 일정 기간 연구 공간, 기자재,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김도현 국민대 글로벌창업벤처대학원 원장은 “외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창업 정보 제공 프로그램과 경진대회를 운영한 뒤, 이를 통해 가능성이 검증된 이들에 대해선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장기적으로는 대학원 과정 등을 통해 처음부터 국내 창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세형 turtle@donga.com·정세진 기자
#고급 인력#외국인 유학생#외국인 인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