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경찰이 보이스피싱… 2만명 400억대 당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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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금액 사상 최대 규모

비리로 해임된 40대 전직 경찰관이 13년간의 수사 경험과 인맥을 이용해 국제적인 보이스피싱(전화사기극)을 벌여 무려 400억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지금까지 적발된 보이스피싱 피해액 가운데 최대 규모다.

박모 씨(42)는 1995년 순경으로 임용된 뒤 각종 사건을 처리하며 경사로 특진했다. 그후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전화사기 사건을 잇달아 해결해 경위로 특진했다. 그러나 2008년 형사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 지인에게 가짜 증거를 만들어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해임됐다.

이후 박 씨는 1년가량 국내에서 사업을 구상하다 여의치 않자 과거 자신이 처벌했던 전화사기범의 제안을 받고 2010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음란전화 서비스를 앞세운 소액결제 사기를 벌였으나 신통치 않았다. 박 씨는 사이버범죄 수사 경험을 토대로 신종 전화사기극을 기획했다. 2011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3년간 중국 해커로부터 국내 저축은행 12곳의 대출 거부자 명단을 사들였다. 박 씨는 대출이 거부된 피해자들만 노리는 ‘맞춤형 사기극’을 준비했다. 과거 자신이 수사했던 직업소개소 사장 강모 씨(36)를 통해 한국 내 술집 종업원들을 시켜 송금을 유도하는 전화를 걸도록 했다. 당시 이런 전화는 옌볜(延邊) 사투리를 쓰는 조선족이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박 씨는 처음으로 한국인을 이용했다.

또 그는 070 국번의 인터넷전화 대신 저축은행 대표번호로 착각할 수 있도록 1588 국번의 전화를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박 씨는 2012년 5월 중국 현지의 단속이 강화되자 베트남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해 9월에는 베트남에서 필리핀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그렇게 사무실을 이전할 때마다 부하 직원에게 조직을 넘겨주며 현지 총책으로 임명했다. 2013년부터 해외에 체류 중인 박 씨는 동생(39)에게 자금관리총책을 맡겼다. 전화사기로 송금 받은 돈을 국내에서 인출하고 중국 베트남의 부하 직원이나 사기전화를 거는 사람들에게 15%씩 나눠주는 역할을 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전화사기 조직에 가담한 사람들은 광고모델, 전 프로야구 선수, 연예인 매니저, 조직폭력배 등으로 다양했고 부부, 형제, 동서 등 친인척 관계도 있었다. 박 씨 등은 사기로 번 돈 중 10억 원을 필리핀 현지 카지노에서 하룻밤 만에 탕진하기도 했다.

광주지검은 대출 희망자 2만 명에게서 400억 원을 챙긴 혐의로 박 씨의 동생 등 26명을 19일 구속 기소하고 해외로 도주한 박 씨 등 21명을 수배했다. 직업소개소 사장 강 씨의 수배 여부를 확인해주고 1000만 원을 받은 서울 모 경찰서 김모 경위(41)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경찰#보이스피싱#피해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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