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단통법에 소비자만 골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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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보조금 아이폰6 개통취소 사태

2일 발생한 아이폰6 불법 보조금 사태가 또 다른 소비자 피해로 번지고 있다. 판매점들이 불법 보조금을 받은 가입자 중 순번이 늦어 아직 개통되지 않은 사람들의 계약을 임의로 취소하고 나섰다. 불법 보조금 지급과 관련해 개통 취소까지 이어진 건 처음이다.

3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2일 10만∼20만 원대에 아이폰6를 사는 조건으로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한 소비자 중 일부는 판매대리점으로부터 ‘정상가(출고가에서 공시 보조금을 뺀 가격)가 부과되거나 이를 원하지 않을 경우 개통이 취소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할인된 휴대전화 할부금을 미리 낸 소비자는 할부금을 추가로 더 내야 한다. 또 개통 후 불법 보조금을 현금으로 지급받는 ‘페이백’ 방식으로 보조금을 받기로 한 가입자는 이를 받지 못하게 된다.

판매대리점의 일방적 계약 취소는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이날 방통위 월례조회에서 “모든 방법을 강구해 후속조치를 하겠다”며 강력한 제재 방침을 밝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방통위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보조금 상한선 위반 건수를 줄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도 “불법 보조금에 대한 처벌이 ‘위반 건수’를 기준으로 집계되다 보니 건수를 줄이기 위해 계약 취소 통보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싸게 구입하는 것’은 불법이 아닌데도 피해를 보게 됐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말에 아이폰6를 싸게 사기 위해 새벽부터 발품을 팔았던 한 가입자는 “법에 따라 이통사를 처벌하는 건 모르겠으나 소비자가 피해를 봐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방통위도 당황하는 기색이다. 계약 취소와 관련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계약을 했다가 이용자 동의 없이 취소하는 행위 역시 불법인 건 마찬가지지만 이를 제재해야 할지는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에서 엄금하고 있는 불법 보조금을 안 줬다고 추가로 처벌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계약 취소 행위가 위법성이 있어 보이지만 제재 여부는 법적 검토를 한 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보조금 살포 사태에 결국 영세 상인들만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통사가 판매대리점에 지급하는 판매 장려금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판매점이 소비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규모만 정하다 보니 이통사는 불법 보조금 처벌 대상에서 한발 비켜나는 것이다.

미래부와 방통위는 그동안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이 낮아졌다는 불만이 나올 때마다 ‘제도 시행 초기의 문제점으로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윤종록 미래부 2차관은 아이폰6 불법 보조금 사태 불과 하루 전 “단통법으로 여러 긍정적 수치가 나타나고 있다”며 “(단통법 개정 논의는) 너무 성급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단통법에 대한 원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요금과 단말기 가격 인하, 소비자 차별 해소 등 세 가지를 단통법으로 다 잡으려 하다 보니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임우선 기자
#단통법#보조금#아이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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