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라테기 씨 “히말라야엔 아들과 오르지 않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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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전 최연소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이뉴라테기 씨 방한
희귀질환자 돕기 ‘678 프로젝트’ 나서

국제 산악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황금피켈상’ 수상자(2002년)는 의외로 무덤덤했다. 기자가 “해발 8000m급 고봉을 오르면서 죽음의 위기를 맞은 적은 없나”라고 물으면 “높은 산을 오르면 위험은 언제나 따라오는 것”이라고 답하는 식이었다.

28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만난 스페인 출신 산악인 알베르토 이뉴라테기 씨(46·트렉스타 글로벌 홍보대사·사진)는 최연소(1992년·당시 24세)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세계에서 10번째로 8000m급 고봉 14곳에 모두 올랐다. 그의 대답은 눈 덮인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 생긴 절벽)가 가득한 곳을 헤쳐 온 베테랑 산악인치고는 너무도 밋밋했다. 그런데 2002년 안나푸르나 등정 이야기를 꺼내자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그는 당시 정상에 도전하던 중 약 7000m 높이에서 산소통의 도움 없이 일주일을 버텨야 했다. 기상 악화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했다. “제가 산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 가족들이 더이상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할 겁니다. 지금도 산으로 떠날 때면 가족들이 ‘하루가 1년 같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14년 전 산에서 친형을 잃었다. 가셔브룸 2봉(8035m)을 오른 뒤 내려오던 길이었다. 이뉴라테기 씨는 최근 들어 조금 다른 이유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희귀 신경변성질환 환자를 돕는 스페인 재단 ‘더블유오피(WOP·Walk On Project)’를 돕기 위해서다. 그는 6000m급, 7000m급, 8000m급 고산을 새로운 경로나 희귀 경로로 오르는 ‘678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에게는 아들(7세)이 있다. “아들과 히말라야에 오르고 싶으냐”고 물었다. 대답은 ‘아니요’였다. “산악인이기 이전에 아버지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678 프로젝트#황금피켈상#알베르토 이뉴라테기#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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