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6년 지나서야 오일허브 핵심 ‘석유혼합’ 허용 논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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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오일허브 사업 ‘빈 깡통’

전남 여수의 오일 저장시설 오일허브코리아여수(OKYC) 전경. 산업통산자원부 제공
‘가동률 81.5%.’

8월 말 현재 오일허브코리아여수(OKYC)가 보유한 탱크 중에서 임대된 탱크의 비율이다. 1년 5개월 만의 성과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OKYC 주주사들이 8년간 빌려 쓰기로 약정한 물량(59.1%)을 제외하면 추가로 유치한 업체는 중국 국영 석유회사 유니펙 한곳뿐이다. 앞서 머큐리아, 마루베니 등이 탱크를 빌려 썼지만 2∼5개월 단기 임차 수준이었다. OKYC의 한 주주사 관계자는 “연간 100억 원가량의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량은 미미하다”며 “철수하고 싶어도 약정물량에 발목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출범 6년 지나서야 규제 손보기 시작

‘동북아 오일 허브 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해묵은 규제 때문이다. 탱크 터미널이 활성화되려면 원유를 섞어 석유제품으로 만드는 석유혼합(블렌딩)이 허가돼야 한다. 그러나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에 따르면 국내 등록된 정제업자를 제외하고는 내수용 제품을 만드는 블렌딩 작업은 가짜석유 제조로 간주돼 불법이다. 이 때문에 중국 석유업체인 페트로차이나는 OKYC에서 연료유와 경유를 섞어 국내 한 발전사에 납품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포기했다.

탱크 터미널 인근의 정유공장을 보세공장(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공장)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일 허브가 되려면 해외 트레이더들이 원유를 가져와 국내 정유공장에서 위탁 가공하는 사업이 활성화돼야 한다. 국내 정유공장들은 보세구역이 아니어서 원유 및 석유제품을 들여올 때 관세를 낸 뒤 정제 및 가공 후 수출할 때 관세를 환급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사이 금융비용이 발생한다.

2008년 OKYC 출범 때부터 지적됐던 문제지만 정부는 이제야 규제를 해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정부는 3월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동북아 오일허브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8월 보세구역 내에서 석유를 혼합, 제조, 거래하는 사업을 ‘국제석유거래업’으로 신설하고 보세구역 내에서 국제석유거래업자의 내수용 석유제품 제조행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석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 차관회의 등 절차를 감안했을 때 개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한 관계자는 “보세공장 지정 건도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 간 조율할 사항이 많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석유 시황도 발목

9일(현지 시간)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배럴당 89.23달러로 심리적 하한선으로 지적됐던 ‘배럴당 90달러’선 아래로 밀려났다. 지난해 평균 가격인 103.52달러보다 13.8% 떨어졌다. 글로벌 경기 회복세가 둔화된 데다 미국 셰일가스 열풍으로 인한 공급 과잉, 중국의 자급률 향상 등이 영향을 미쳐 당분간 원유 및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자국에 오일 탱크 터미널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OKYC 관계자는 “탱크 터미널 사업은 향후 유가가 오를 것이라고 전망해 원유를 비축해두려는 수요가 있어야 장사가 되는데 시황이 좋지 않아 임차 업체를 유치하기 어렵다”며 “업체들이 장기 계약을 꺼려 단기 물량을 유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빌린 탱크를 다른 업체에 재임대할 수도 있지만 재임대를 할 곳도 없다”고 털어놨다.

○ 울산 오일 허브도 지지부진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총 1조5033억 원을 추가로 유치해 2016년까지 울산 북항에 990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2020년까지 울산 남항에 1850만 배럴의 원유를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2월 코리아오일터미널(KOT)이 출범했으나 현재 한국석유공사(51%), 중국 저장업체 보팍(38%), 에쓰오일(11%)이 주주로 참여한 가운데 다른 업체들은 참여를 꺼리고 있다.

한 국내 정유업체 관계자는 “정부의 요청을 받았지만 사업성이 보이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정유업계가 적자로 고전하고 있어 투자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은 “동북아 오일 허브 사업은 시황 예측 실패와 규제 해제 지연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사업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오일허브#석유혼합#동북아 오일허브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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