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산케이 전 서울지국장 기소는 패착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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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전 지국장 기사는 검찰 조사로 골간이 무너졌다… 보도 통해 대통령은 명예회복
관심 많은 외교, 국제적인 사안… 그런데도 기소한 건 득보다 실
대통령 의중만 살피느라 기소 득실을 논의조차 안한 참모들 ‘과정의 패착’도 문제

심규선 대기자
심규선 대기자
검찰이 가토 다쓰야(加藤達也)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기자는 그를 기소한 것은 패착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소 과정이 더 패착이다.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확실히 해둘 게 있다. 우선 산케이신문과 가토 전 지국장이 한국 대통령을 비방 중상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는 주장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법의 판단과는 별개로, 그의 기사는 분명 독신인 여성 대통령을 비하했다. 도를 넘는 혐한, 반한이 트레이드마크인 산케이 체질의 연장선상에 있는 기사다.

산케이신문은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도 했다.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가토 전 지국장이 기소됐다고 해서 한국의 언론 환경이 달라질 일은 없다. 한국 언론은 일본 언론보다 훨씬 자유롭고 강하게(때로는 너무 심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권력과 권력자를 비판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왜 기소가 패착인가.

실익이 없다. 검찰은 가토 전 지국장을 출국정지 시키고 세 차례나 조사했다. 그의 기사는 골간이 무너졌다. 대통령은 ‘의혹의 7시간 동안’ 청와대 경내에 있었던 게 확인됐다. 그 사실은 곧바로 언론에 보도됐다. 대통령의 명예는 회복됐다고 봐야 한다. 일벌백계로 재발방지를 하겠다고? 대통령과 외신의 갈등이 수사로까지 번지는 일은 수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이번 일은 기소 사실만 남고 교훈은 없을 것이다.

잃을 게 없다면 기소를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잃은 게 많다. 가토 전 지국장은 10일자 산케이신문 1면에 큼지막한 수기를 실었다. 사과 한 줄 없었다. 그는 ‘박근혜 정권 최대의 문제인 언론자유에 대한 편협함을 온몸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돼 마음이 한국의 가을날씨처럼 맑다’고 했다. 핍박받는 영웅이 됐다. 대통령이 한 일본 기자를 너무 키워주고 자신은 너무 작아졌다.

외국 언론에도 호재를 던져줬다. 외신에게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 내용은 중요치 않다. 기소만이 문제다. 유력한 외신들이 모두 비판했다. 한국은 졸지에 언론을 탄압하는 나라가 됐다. 사실이 보도되는 것이 아니라 보도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쯤에서 반박이 나올 법하다. 다른 나라 언론이라고 예외를 두어야 하느냐,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인데 그냥 넘어가라는 말이냐. 이 점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누구도 산케이신문을 특별 취급하라고 한 적이 없다.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가 문제가 없다고 한 사람도 없다. 쟁점은 죄의 유무가 아니라 기소의 적절성 문제다. 불기소한다고 기사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고, 기소했다고 해서 법원이 혐의를 인정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기소 과정에 이의가 있다고 한 것은 그래서다. 기소의 득실을 냉철하게 따져보는 과정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청와대 외교부 검찰 등이 기소 여부를 숙의했어야 한다. 만약 참모들이 진지하게 득실을 저울질하고 기소를 결정했다면 기자와는 생각이 다르더라도 평가하겠다. 그런데 그런 흔적이 없다. 결과의 패착보다 과정의 패착이 더 아쉽다.

어른거리는 것은 오로지 대통령의 의중뿐이다. 이 사건을 비판적, 대대적으로 보도한 산케이나 요미우리 기사는 그냥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분노가 기소에 영향을 준 것 같다는 기사는 비아냥 같아 아프다. 명예훼손사건은 피해자의 의사가 중요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외국 기자가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며 득실을 분석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직무유기다. 기자가 만난 고위직이나 지식인 중에도 기소를 반대한 사람이 많다. 기자도 조사는 확실하게 했으니 기소유예를 함으로써 대통령의 너그러움을 보여주고, 가토 전 지국장과 산케이신문에 빚을 지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믿는다.

최근 일본 언론사의 서울특파원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불만이 있다. 청와대가 직접 전화를 걸어 비우호적인 기사에 대해 항의를 한다는 것이다. 기자가 도쿄특파원으로 있을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를 많이도 비판했지만 총리실에서 항의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 외신에 대한 항의는 권부 중의 권부인 청와대가 할 일이 아니다. 외교부가 적절하게 설명하면 된다. 그게 언론계의 국제적인 상식이다. 이번처럼 대통령의 분노와 진정한 국익이 충돌할 때, 어떻게 대통령을 설득할지를 고민하는 게 청와대가 할 일이다. 비록 실패로 끝난다 할지라도.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산케이신문#언론의 자유#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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