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誌 “아베, 납북자 협상 北에 농락당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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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칸포스트 ‘양측 3차례 협상’ 보도
“日, 北 재조사 믿고 제재 풀어줬는데 생존 납북자 없다고 최근 통보해와”

북한이 납북자 재조사와 관련해 “현재 생존한 납북자는 없다”고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고 일본 주간지 슈칸포스트 최신호(10일자)가 보도했다. 일본 정부 측은 ‘납북자 구제도 못한 채 대북 제재부터 해제했다’는 비판과 함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북한에 농락당했다는 점이 알려질까 우려해 북한의 이런 통보를 지금까지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잡지는 전했다.

동아시아 정치에 정통한 일본 학자는 “슈칸포스트가 정부 내부 관계자의 말을 확인해 기사를 쓴 것 같다. 실제 일본 정계와 관계에 그런 기류가 있다. 기사가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베 정권이 북한에 농락당한 사실이 알려지면 지지율 유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슈칸포스트에 따르면 북한이 납북자 재조사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이 대북 독자제재 일부를 해제한 올 7월 3일 이후 양국은 3차례 비밀협상을 열었다. 8월 21∼23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1차 비밀 협상에서 북한은 납북자 재조사 중간보고의 개요를 전달했다. 핵심은 “현 시점에서 살아 있는 납북자는 없다. 따라서 중간보고에 납북자는 포함돼 있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일본 정부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통보였다. 현재 일본 정부가 집계한 공식 납북자 수는 17명. 일본은 이미 귀환한 5명을 제외한 12명을 송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은 “12명 중 4명은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고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씨를 포함해 8명은 이미 사망했다”고 주장해 왔다. 결국 북한은 살아 있는 납북자가 없는데도 올해 5월 스웨덴에서 납북자 재조사를 일본과 합의한 셈이다.

북한은 2, 3차 비밀협상에서도 똑같은 주장을 했다. 그러자 일본 측 협상 대표인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지난달 중순에 열린 3차 협상에서 “그런 중간보고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달 19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북한이 중간보고 할 게 없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잡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납북자를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 조사를 하지 않아도 납북자 동향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5월 스웨덴 협상에서 “납북자를 재조사하겠다”고 말해놓고 그 대가로 대북 제재 해제를 얻어냈다. 실제로 허종만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의장은 올 7월 초 북한 인적왕래 규제가 풀리면서 8년 만에 북한에 다녀왔다.

도쿄 외교가에서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납치 문제 해결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는 아베 총리의 집념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일본은 한미일 대북 공조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주변국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 손을 잡았다. 슈칸포스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북한의 중간보고 시점에 맞춰 방북하기 위해 정부전용기로 북한에 가는 예행연습까지 했다. 슈칸포스트는 “모두 환상이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허위 보고에 큰 망신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상반기 집단 자위권 강행으로 아베 내각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을 때 납북자 재조사 발표가 나면서 아베 정권은 다시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무리한 정책 추진에 따른 부메랑을 맞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북한#일본 납북자#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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