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엔低 쇼크, 1997년처럼 한국경제 발목 잡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일 03시 00분


그제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 환율이 한때 달러당 110.09엔까지 치솟았다. 달러당 엔화 환율이 110엔을 돌파(엔화 가치는 하락)한 것은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 강세의 ‘슈퍼 달러’ 폭풍이 한국시장까지 몰아닥쳐 어제 코스피는 1,970 선으로 떨어졌다. 국제사회가 일본의 장기불황을 탈피하기 위한 엔화 약세를 사실상 용인하면서 엔화 약세(엔低)는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한국의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100엔당 원화 환율은 얼마 전 950원대까지 하락했다. 2011년 10월의 월평균 원-엔 환율이 100엔당 1499원이었으니 3년 만에 36% 급락했다. 일각에서는 1, 2년 안에 100엔당 800원 안팎까지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현대차와 도요타처럼 한국과 일본은 세계 시장에서 경합하는 제품이 많아 지나친 엔저는 우리 수출기업에 타격을 준다.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 할 것 없이 기업 실적이 크게 나빠진 데는 엔화 약세 가속화의 영향이 적지 않다.

한국의 현대 경제사에서 급격한 엔저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1995∼1997년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30% 이상 오르면서 수출이 격감하고 경상수지 적자는 급증해 1997년의 외환위기를 부른 출발점이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엔화 강세에 급증한 한국 수출은 2012년 말 시작된 아베노믹스의 엔화 약세 정책으로 주춤거리게 됐다. 급격한 엔저 현상에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어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앞당겨 할 수 있도록 저금리 외화대출을 해 주는 등 엔화 약세를 최대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원-엔 환율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엔-달러 환율이어서 엔저 흐름 자체를 한국이 돌려놓기는 어렵지만 속도 조절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과감한 내수 진작과 경기 부양, 경상수지 흑자로 쌓인 달러의 해외 투자 촉진, 한국은행은 추가 금리 인하를 서둘러야 한다. 기업은 경쟁력 향상과 원가 절감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생산시장과 노동시장 구조조정으로 국가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일본#엔화#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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