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장동건이 우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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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는 남자’
영화 ‘우는 남자’
요즘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두 남자가 있다. 하나는 홍명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장동건이다. 두 남자 모두 참으로 멋진 남자들인데, 이상하게도 후진 선택만 거듭하다 망해가는 것이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미남배우 장동건. 그는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에 주연으로 출연해 1000만 관객을 넘긴 이래, 10년 동안 단 한 편도 흥행작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배우의 운명은 영화 제목대로 간다더니, 장동건은 최근 ‘우는 남자’라는 야심작에 단독 주연으로 나섰다가 흥행에서 진짜로 ‘우는 남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맨날 ‘역시 장동건이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장동건은 따지고 보면 돈값을 하는 배우가 아니다. ‘신사의 품격’ 같은 TV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로 성공했지만 영화에선 유독 쓴맛을 보는 현상이 10년이나 지속되는 걸 그저 ‘운이 안 좋아서’라고 둘러댈 순 없는 일이다. 매우 싸가지 없게 말하자면, 대중은 장동건을 공짜(드라마)일 때만 찾을 뿐 돈(영화)을 내면서 소비할 의향은 없는 것이다.

왜 이런 재앙이 초래된 걸까. 나는 영화배우로서 출연작을 고르는 그의 태도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친구’(2001년)를 통해 영화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실히 인정받은 뒤 그는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로 흥행의 정점을 찍었다. 이후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는? 바로 곽경택 감독의 ‘태풍’(2005년), 중국 천카이거 감독의 ‘무극’(2006년),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2011년), 허진호 감독의 ‘위험한 관계’(2012년) 등등이다. 모두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거장’ 혹은 ‘흥행술사’라는 소리를 듣는 감독들의 작품이란 사실이다.

‘태풍’은 ‘친구’로 성공한 곽경택 감독의 다음 작품이었고, ‘마이웨이’는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여 만에 만든 영화다. 허진호는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출하며 대한민국 멜로 영화의 최고수로 등극한 예술가이고, 천카이거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패왕별희’의 감독이다.

어떤가. 장동건의 패착이 한눈에 드러난다. 그는 모험하지 않고 만날 ‘될 것 같은’ 작품들에만 출연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우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원빈 주연의 ‘아저씨’로 흥행에 성공한 이정범 감독의 다음 작품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감독들을 집중적으로 선택하는 동안 그는 정작 성공하는 이야기들을 선택하는 노하우를 쌓지 못한 것이다.

‘우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의아해했다. 이렇게 설득력도 없고 짜임새도 없고 그럴듯한 분위기와 액션으로만 밀어붙이는 허술한 이야기를 장동건은 왜 택했을까? 멋져 보이는 영화를 선택하기 전에 절실한 이야기를 골라낼 줄 아는 안목과 내면적 깊이와 용기가 지금의 그에겐 필요한 것 같다.

배우가 멋지게 보여 성공하는 영화는 없다. 좋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멋지게 보일 뿐. 캐릭터의 내면은 시도 때도 없이 눈 부라리고 미친 듯이 절규한다고 해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절실함과 설득력에서 직조되는 것이다. 그와 함께 ‘태극기 휘날리며’에 출연했던 원빈이 이후 ‘우리형’ ‘마더’ ‘아저씨’ 등 주인공의 내면을 향해 병적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작품들을 고르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톰 크루즈가 30년 가까이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 군림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동시에 그 기대를 배신하고 극복해 나가는 도전정신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험 없이는 성장도 없다. 안전한 선택은 예술가에겐 자살행위다.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지금 이 자리로부터 가장 멀리 달아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가 진정한 예술가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장동건#우는 남자#드라마#감독#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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