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교육 관변 단체의 본심 “돈은 먹는 놈이 임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7일 03시 00분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설립에 관여했다는 한국경제교육협회(한경협)가 수십억 원대의 국고보조금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됐다. 고위 간부 허모 씨는 남편과 지인을 공동대표로 앉힌 A사에 청소년 경제신문 발행사업을 몰아주고 사업비 일부를 돌려받는 수법으로 36억 원을 가로챘다. 박모 사무총장은 A사로부터 사업 청탁과 함께 1억6000여만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권 실세들만 업으면 관변 단체를 급조해 나랏돈을 빼먹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한경협이 보여준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2008년 12월 자본금 0원인 이 협회의 설립을 허가하며 “우리 부의 청소년 경제교육 추진사업 주관기관으로 조속히 허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힐 만큼 특혜 시비를 일으켰다. 협회는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이석채 전 KT 회장, 박병원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1∼3대 회장으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5년간 270여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받고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서 돈을 끌어 모은 데는 이들의 면면이 위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A사 대표의 수첩에서는 “돈은 먹는 놈이 임자다”라는 메모가 발견됐다. 나랏돈을 눈먼 돈으로 여기고 빼돌렸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문구다. 기재부가 감사에서 수의계약 방식을 문제 삼자 A사는 들러리를 세워 경쟁 입찰하는 것처럼 속였다. 한경협은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좌(左)편향 경제교육을 바로잡고 건전한 시장경제를 가르치기 위해 교육용 신문까지 발행했다. 그런 협회가 온통 비리로 얼룩졌으니 청소년들이 시장경제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될까 걱정스럽다.

주관 부처인 기재부는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국고보조금과 기업들의 돈을 몰아주고도 관리 감독은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권 실세가 추진하고 선배 관피아들이 회장과 고문으로 있으니 협회를 사실상 방치한 것이다. 정권이 바뀐 뒤에야 감사원 감사와 경찰 수사에 의해 비리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어제 기재부 공무원 12명에 대해 징계를 통보했다. 공직자들이 혈세를 제대로 쓰는지는 감독하지 않고 되레 각종 자문료와 명절 선물만 챙긴 데 대한 처벌로는 너무 가볍다.
#경제교육#박영준#한국경제교육협#국고보조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