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얻어먹는 것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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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아버지
[잊지 못할 말 한마디]한성봉 (출판사 동아시아 대표)

한성봉 (출판사 동아시아 대표)
한성봉 (출판사 동아시아 대표)
때를 밉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의 뼈만 앙상하고 주름진 살갗에 짠한 마음을 닦아 냅니다. 오십 중반의 아들은 세상살이만으로도 버거운지라, 한 달에 두 번 같이 목욕하는 것이 유일한 효도입니다. 오늘은 이십대 손자까지 같이 와서 할아버지가 매우 시원해 합니다.

목욕 중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공부와 관련된 앞으로의 희망을 묻습니다. 아직 젊은 손자는 거침없이 출세와 권력의 꿈을 말합니다. 할아버지가 잠시 눈을 끔벅이더니 손자를 가까이 부릅니다.

“사람은 밥을 하루에 세 끼밖에 못 먹는다. 누구나.”

묘한 기분입니다. 손자는 건성건성 듣고 있습니다만, 저는 오십 년 전에 아버지에게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닐곱 살쯤, 저는 아랫집 토담 밑에 피어 있던 예쁜 꽃을 몰래 캐서 우리 집 마당에 옮겨 심은 적이 있습니다. 곧 발각이 났고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네 것은 없단다. 네가 먹는 밥도 네 것 같지만 실은 엄마가 만들어줬고, 엄마는 쌀을 만드는 농부에게 얻어 온 것이고, 농부는 땅과 비와 하늘의 햇빛에게서 빌려 온 것이란다. 그러니까 너는 밥을 얻어먹고 있는 것이야.”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의 제게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였지만, 훗날 제 삶에는 대나무 숲에 이는 바람소리였습니다. 뜨거운 욕망과 거친 격정에서 집착과 독선에 눈멀 때, 펄럭이는 화두였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자연의 일부로 존재했다 사라지는 여여자연(如如自然)의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소유하는 모든 것은 자연의 것이므로, 잠시 자연에게서 빌려 쓰고 다시 자연에 돌려주는 것, 따라서 소유가 없으니 욕망도 집착도 없습니다.

일본의 어느 대학에 잠시 머무를 때, ‘MT’를 갔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간사 앞에 길게 줄을 섰고 교수들도 그 줄 가운데 있습니다. 회비를 내는 것입니다. 식사 시간에 교수가 학생과 같이 줄서서 똑 같은 회비를 내는 것이 충격적이었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교수는 겸연쩍은 표정입니다.

“저는 이 학생들에게서 밥 얻어먹고 있는데요?”

동남아에서 스님의 탁발(托鉢)행렬을 보면, 생산 활동을 할 수 없는 수행자의 걸식을 통한 공양과 보시의 평등, 무욕과 무소유의 실천이라는 부처님의 뜻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가진 자, 권력자, 존경의 대상이 되는 자들의 ‘몸을 낮추는’ 경건한 의식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나라에서 승려는 존경과 예불의 대상입니다. 이들에게 부처님은 미천하고 낮은 사람과 같이 밥 먹을 것을 명령합니다. 그것도 그들의 밥을 얻어먹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것이 본디 저 사람들의 것이고 그들 때문에 너의 가짐과 권위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대학 교수는 학생 때문에 밥 먹고 사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하며 권력자는 위임받은 권력으로 은혜로운 사람들과 세상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는 이념과 사상과 체제를 초월한 자연의 질서입니다.

때 미는 평상 위에 누워 손자의 손길에 흐뭇해하는 아버지를 보자 장난기가 발동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많이 당했던 것, 아버지의 거시기를 살짝 잡아 당겼다 놨습니다. 순간 아버지가 당황하여 찡그리더니 이내 미소를 짓습니다. 곁에서 손자가 겸연쩍게 웃고 살짝 민망해진 저도 따라 웃습니다.


한성봉 (출판사 동아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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