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간 言-官-政 활동 이웅희 前의원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웅희 전 의원(사진)이 오랜 투병 끝에 3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경기 용인 출신인 이 전 의원은 중앙고와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신문학과를 수학한 뒤 1953년 자유신문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1959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장, 외신부장, 기획부장, 논설위원, 주미 특파원,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동아일보에서 이 전 의원과 함께 재직했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고인은 언론인으로서 굉장히 부지런해서 현장 취재에 특히 강한 발군의 정치부 기자였다”며 “남다른 필력(筆力)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평소 본인의 소신을 서슴없이 얘기하는 스타일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논설위원 재직 당시인 1972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을 취재하기 위해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

1980년에는 전두환 정부에서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1982∼86년 문화방송(MBC) 사장, 한국프레스센터 이사장을 거쳐 1986년 8월부터 1년 6개월간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냈다.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민정당으로 용인에 출마해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13대에 이어 14, 15대 총선에서 내리 당선된 고인은 3선 의원으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민정계로 분류되며 한국 정계의 ‘킹메이커’로 불린 고 허주 김윤환 전 민주국민당 대표, 이한동 전 국무총리, 이만섭 전 국회의장 등과 친분이 두터웠다.

하지만 1999년 용인시장 보궐선거 공천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갈등을 빚어 탈당하기도 했다. 당시 이 총재 측이 강력히 밀었던 구범회 후보는 득표율 3위에 머물러 보궐선거 이후 공천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당시 비주류 측에선 “이웅희 의원이 추천했던 후보를 내세웠다면 손쉬운 선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고인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올바른 정치개혁과 정치발전을 바란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47년간의 언론계, 관계, 정계 활동을 마감한 것이다.

고인은 1988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를 지냈고, 의원 시절에는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으로 한일 관계의 막후 역할을 맡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구계옥 씨와 아들 석배(주러시아 공사) 시배 씨(삼흥개발 상무), 딸 희숙 씨, 사위 윤주원 씨(아이드림안과 원장)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7일 오전 7시, 장지는 경기 용인의 선산이다. 02-3010-2265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