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Hot 피플]부친의 극단-과격 이미지 씻고 프랑스 제1당 된 르펜 FN 당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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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극우 선봉에 선 싱글맘… 아버지를 넘어서다

‘태풍, 허리케인, 쓰나미, 지진, 빅뱅….’

지난달 25일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이 24.8%의 득표율로 프랑스에서 제1당으로 올라서자 유럽 정계는 그 충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FN 돌풍의 중심에는 세 아이의 싱글맘인 마린 르펜(45)이 있었다. 반유럽연합(EU)과 반이민 정책을 내건 FN의 당수인 그는 이번 선거 결과의 여세를 몰아 2017년 차기 프랑스 대선에서도 결선까지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르펜은 영국의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와 함께 유럽 극우파 정당의 대표 얼굴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달 28일 유럽의회가 자리 잡고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월 24일까지 극우 정당들의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에서도 르펜은 마뉘엘 발스 총리의 사퇴와 의회 해산을 대담하게 요구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게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즉각 총선을 다시 실시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르펜의 부상은 프랑스 정치 엘리트들의 실패 탓이 크다. 좌파든 우파든 주류 정당들이 거대한 불신에 빠져 있는 틈을 타 르펜은 낡은 이미지의 FN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이 FN을 창당할 때 마린 르펜은 4세에 불과했다.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학교에 다닐 때 ‘파시스트의 딸’이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1976년 르펜 가족이 잠을 자던 도중 집 앞 계단에서 누군가가 던진 폭탄이 터지기도 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18세에 FN에 입당했다.

르펜은 2011년 FN 당수에 취임한 후 아버지의 과격 노선과 선긋기에 나서며 당의 ‘악마’ 이미지 세탁에 나섰다. 그는 당 지도자들이 인종차별주의 발언을 했을 때 공개적으로 징계를 내렸다. 대신 새롭고 말쑥한 이미지의 20, 30대 간부들을 대거 발탁했다. 3월 지방선거에서 후보자들의 14%는 30대 이하였다. 르펜의 조카딸인 마리옹 마레샬르펜도 2012년 22세의 나이에 FN 소속 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미디어 언어’ 활용의 귀재로도 꼽힌다. 두 번 이혼하고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그동안 FN과 별 관계가 없던 ‘페미니스트’ ‘자유’ ‘민주’ ‘공화주의’ 등의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가령 낙태에 대해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인에 대한 대량학살”이라고 과격한 표현을 썼다면 그는 ‘임신 중절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환급금 중단’이라는 순화된 용어로 이 이슈에 접근한다. 또 이민자의 권리를 내세우는 비정부기구(NGO)를 ‘친이민 로비집단’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세계화를 ‘글로벌리즘’(세계화주의)으로 바꿔 불러 공산주의(코뮤니즘)처럼 위험한 이데올로기처럼 비치게 했다.

프랑스 최악의 경제 사회적 위기 속에서 FN은 노동계급, 실업자 등이 가장 선호하는 정당이 됐다. FN은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 정당으로 긴축정책 반대, 보호무역주의, 은행 국유화 등의 주장으로 사회당보다 더 많은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좌파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르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르펜은 1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존경하는 만큼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존경한다”고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무엇보다 러시아와 러시아인들의 이익을 적극 옹호하는 정책을 편다는 이유를 댔지만 ‘국수주의자’의 허물을 벗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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