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은 살아있다” 손그림 고집하는 작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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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정철-고일권-쥬드 프라이데이
작업실엔 서예붓-먹물-물감-종이 가득
특유의 질감-붓의 생동감… 느낌 확 달라
“쉽게 수정할 수 없어 집중력 되레 높아져”
“능숙해지면 ‘달인’처럼 컴퓨터보다 빨라”

붓의 생동감 있는 터치가 느껴지는 정철 작가의 웹툰 ‘본초비담’. 네이버 제공
붓의 생동감 있는 터치가 느껴지는 정철 작가의 웹툰 ‘본초비담’. 네이버 제공
《 흔히 웹툰 작가 작업실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컴퓨터가 차지한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색칠이 끝나고, 지우개질 대신에 단축키로 수정하고, 복잡한 건물과 거리 배경도 컴퓨터 프로그램이 뚝딱 그려주는 디지털 시대니까. 하지만 21일 경기 부천시 부천로에 있는 부천만화창작스튜디오의 정철 작가(41) 작업실의 풍경은 달랐다. 넓은 책상은 서예 붓과 먹물, 수채화 붓과 물감, 종이로 가득했다. 정 작가는 손그림으로 웹툰을 그린다. 책상 구석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은 원화 파일을 웹툰 형식에 맞춰 편집하고 만화 대사를 입력할 때뿐이다. 》

그는 2011년 8월부터 네이버 웹툰 ‘본초비담’을 연재 중이다. 본초비담은 한의학에서 쓰는 약초 발견 설화를 바탕으로 고조선 시대 사람들의 모험을 다룬 역사물이다.

그는 “디지털 방식으로도 웹툰을 그려봐서 그 한계를 명확히 알 수 있다”며 “비극적인 장편 사극 작품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감성적 정서를 가진 종이의 질감과 붓의 생동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감성’을 살리기 위해 디지털 작업 대신 수작업을 고수하는 웹툰 작가는 정 작가뿐이 아니다.

고일권 작가(29)도 1623년 인조반정을 배경으로 한 전통 사극 작품인 웹툰 ‘칼부림’을 그리기 위해 서예 붓을 들었다. 그는 “남성적이고 땀내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끊임없이 미묘하게 변하는 붓 선과 먹의 농도가 그 느낌을 살리는 데 꼭 필요했다”고 했다.

서울 시내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쥬드 프라이데이 작가의 웹툰 ‘길에서 만나다’. 네이버 제공
서울 시내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쥬드 프라이데이 작가의 웹툰 ‘길에서 만나다’. 네이버 제공
현실적 이유로 손그림을 택한 작가도 있다. 웹툰 ‘길에서 만나다’의 작가인 쥬드 프라이데이(본명 현종욱·36)는 “회사를 다니면서 웹툰 연재를 하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할 수 없어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나 회의시간에 틈틈이 스케치북에 그려야 했다”며 “여건상 손그림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빠듯한 마감 일정을 맞출 수 있을까. 세 작가의 말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했다.

“손그림은 쉽게 수정할 수 없어서 집중력이 더 높아집니다. 디지털 작업은 컴퓨터 성능에 좌우되지만 수작업은 능숙해지면 컴퓨터보다 빠른 달인 수준도 될 수 있어요. 오히려 손그림의 풍부한 효과를 컴퓨터로 내기 위해서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손그림을 택한 작가들은 원화에 대한 예찬을 감추지 않았다.

정 작가의 작업실에는 본초비담 원화가 어린이 키만큼 쌓여 있다. 그는 원화 1400여 장 중 42점을 골라 13일부터 4월 8일까지 프랑스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다.

그는 “요즘은 원화가 웹툰이나 인쇄물 복제를 위한 수단이지만 그 속에 원본에서만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다. 독자가 직접 원화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국내에도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작가도 “원화는 무한복제가 가능한 데이터파일이 아닌 오직 단 하나뿐인 ‘실제’라는 그 자체만으로 매력이 있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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