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진부한 졸업식은 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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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학부모 함께하는 졸업식 현장

11일 서울 강동구 선사고(위)와 천일중(아래)의 졸업식 현장. 선사고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액막이 타령’으로 졸업생들의 앞날을 재치있게 축하했다. 천일중은 졸업생의 학창시절을 엿볼 수 있는 ‘학급별 포토존’을 운영했다.
11일 서울 강동구 선사고(위)와 천일중(아래)의 졸업식 현장. 선사고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액막이 타령’으로 졸업생들의 앞날을 재치있게 축하했다. 천일중은 졸업생의 학창시절을 엿볼 수 있는 ‘학급별 포토존’을 운영했다.
“어∼루 액이야. 어∼루 액이야. 어기어차 액이로구나. 대학 떨어져 드는 액은 재수하면서 막고 재수하면서 드는 액은 합격 소식이 다 막아 낸다. 어∼루 액이야. 어기어차 액이로구나∼.”

마당놀이 공연 현장이 아니다. 최근 졸업식이 열린 서울 강동구 선사고 졸업식 현장의 모습이다. 졸업식이 끝나갈 무렵 졸업생, 교사, 학부모 대표가 나와 선창을 하면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후창을 받았다. 타령의 ‘쌍수(쌍꺼풀 수술) 실패로 드는 액(일을 방해하는 악한 기운)은 다이어트로 막고 다이어트로 드는 액은 화장발로 다 막아낸다’와 같은 재치 있는 가사에 졸업식 참석자들의 웃음이 연신 끊이질 않았다.

최근 졸업식 시즌을 맞춰 많은 학교가 색다른 졸업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건전한 졸업식을 만들기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노력한 결과다.

11일 서울 강동구의 선사고, 천일중 졸업식 현장을 찾았다.

[서울 선사고] 모두 졸업장 받는 참여형 졸업식


강당에 모여앉아 학생대표가 졸업장을 받고 각종 상을 수상할 학생들이 나가 상을 받는 졸업식은 이제 사라지다시피 했다.

서울 선사고는 성적 우수, 개근상 등 졸업생 시상내용은 간단하게 스크린에 영상으로 표시했다. 졸업장은 한 명씩 다 받게 했다.

졸업생 한 명씩 호명되면 강단에 올라가 교장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은 뒤 교사들이 길게 두 줄을 서 손뼉을 치는 ‘박수터널’을 지나가며 축하를 받았다.

이날 졸업을 한 선사고 3학년 김도현 양은 “며칠 동안 졸업 공연을 준비하느라 ‘졸업을 한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졸업장을 받고 그동안 정든 선생님들과 포옹을 하니 학교를 떠나기가 많이 아쉽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선사고 졸업식은 졸업생과 재학생을 포함한 학생졸업준비위원회가 교사들의 지도를 받아 기획했다.

학생들에게 가장 큰 환호를 받은 공연은 졸업식 오프닝이었던 KBS 개그콘서트의 ‘놈놈놈’ 패러디. ‘필근이’ 역을 맡은 재학생에게 조언하는 친구 역할을 교사들이 맡아 참석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배성우 선사고 교사는 “졸업식의 주인공인 만큼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모든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졸업식을 기획하려고 애썼다”며 “딱딱한 졸업식이 아닌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선생님들이 연극에서 망가지는 역을 자처했다”고 말했다.

이날 졸업한 3학년 6반 홍순찬 군의 아버지 홍종길 씨(53·서울 강동구 암사동)는 “둘째 아들 고등학교 졸업식이라 지금까지 초중고 졸업식에 총 6번째 참여했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졸업식이었다. 공연을 많이 한다고 들어서 어수선할 줄 알았는데 질서 있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서울 천일중] 이색적인 추억 만드는 졸업식


“20년 후 진로 상담가가 돼 있는 2033년의 나에게.” 서울 천일중 졸업식 포토존 현장에 설치돼 있는 한 학생의 편지 머리글이다.

천일중은 졸업생 모두가 20년 후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점묘화로 그려 학급별 포토존을 만들었다.

포토존을 만드는 데 쓰인 학생 한 명 한 명의 편지들은 타임캡슐에 넣어 학교에 보관되고 학생들이 20년 후에 학교에 방문했을 때 타임캡슐 속 자신의 편지를 읽어볼 수 있도록 했다.

졸업식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자녀의 학교생활을 되돌아보고 자녀의 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3학년 강명서 학생의 어머니 차현순 씨(46·서울 강동구 천호동)는 “졸업식에 참여하면 공식행사를 지켜보는 경우가 보통인데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직접 보고 편지를 읽으니 감동적이다”고 소감을 말했다.

졸업생들은 타임캡슐과 점묘화를 준비하면서 기말고사가 끝난 뒤 해이해질 수 있는 수업집중도를 높여 3학년 말의 무기력함을 극복했다. 프로그램을 지도했던 이경화 천일중 미술 교사는 “3학년 기말고사가 끝나면 수업시간에 영화를 본다든지 ‘시간 때우기’ 식의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는데 포토존을 만드는 일에 학급별 경쟁이 붙어서 평소보다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천일중 졸업식은 학급별 친구 간의 마지막 단합대회였다. 학급별로 모여 앉은 졸업생들은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촬영·편집한 학급별 영상을 보면서 학교생활의 추억을 되새겼다. 학급별 응원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 졸업한 3학년 성찬혁 군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유가 있을 때 1년 동안의 학급 생활을 영상으로 만들었다”며 “영상을 만들면서 1년 동안 친해지지 못한 친구들과도 더 친해졌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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