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교]법치를 흔드는 권은희 과장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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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교 세종대 교수·변호사
이재교 세종대 교수·변호사
법원 재판에 대한 공격이 도를 넘은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에 쏟아지는 공격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민주당은 “재판부는 국민의 보편적 법 감정과 상식을 무시했다”(이윤석 수석대변인)거나 “살아있는 권력의 노리개가 됐다”(김정현 부대변인)는 논평을 냈다. 의원 개인도 아니고 대변인 공식 논평이다. 모 민주당 의원은 “(재판장의) 태도가 지난해 10월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감사원장으로 간 직후부터 많이 달라졌다”고 주장했으나 아무런 근거를 제시한 바 없다.

이 정도면 민주국가에서는 법정모욕이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처사라고 나라가 발칵 뒤집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법치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판결에 불복하면 항소하면 그만! 기자회견으로 법원 판결 비난하는 것은 어디서 나온 못된 버릇? 외국에선 법정모욕죄 적용할지도 모를 일. 대법원이 엄중 경고해야 합니다.”

이 문구는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012년 1월 20일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재판과 관련하여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이번 일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이번 민주당의 논평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정치인들이야 정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고,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언동은 또 무엇인가. 김 전 청장이 수사를 방해했다고 재판부에 증언했던 권 과장은 김 전 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이 선고된 다음 날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재판부가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와 판단이 결여됐다는 의심이 된다”고 주장했다.

판결에 대하여 오판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오판을 주장할 때 명심할 점은 사실 판단에 대해서는 해당 재판부가 가장 정확하다는 전제이다. 검찰, 변호인 등 재판 당사자들이 제출한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해당 재판부뿐이다. 만약 검찰이나 피고인(변호인), 증인과 같은 사람들이 오판을 주장하려면 객관적으로 명백한 증거나 오류를 제시할 수 있을 때에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김 전 청장이 수사 방해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것인지는 사실 판단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권 과장 진술이 여러 차례 번복되었고 통화 기록과 같은 객관적인 증거에도 맞지 않아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권 과장은 자신이 증언한 내용을 재판부가 믿지 않았으니 오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법원 안팎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불평이기는 하나, 현직 경찰 간부가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이런 주장을 했으니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관은 국가 사법기구의 구성원이기에 사법경찰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현직 경찰관이 재판부를 대놓고 공격하는 것이 과연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언제부턴가 여든 야든, 검찰이든 피고인이든, 자신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무차별적으로 재판부를 공격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특히 정치인, 검찰, 법조인과 같이 누구보다 앞서 재판을 존중해야 할 사람들이 판결을 부정하는 행태는 법치에 더욱 치명적이다.

이들에 의해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회가 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방책이 없을까? 결국 국민이 해결할 수밖에 없겠다. 정략적인 동기로 판결을 공격하는 사람은 법치주의를, 나아가 헌법을 부정하는 사람이니 이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겠다. 이들로서는 국민으로부터 표나 관심을 못 받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게 없기 때문이다.

이재교 세종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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