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시인 “쓰레기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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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에세이 ‘다시 사랑하고 싶은 날’ 낸 신현림 시인

옆집 언니 같은 따스함으로 독자를 위로하는 에세이를 펴낸 신현림 시인.
옆집 언니 같은 따스함으로 독자를 위로하는 에세이를 펴낸 신현림 시인.

신현림 시인(53)은 서울 안국동에 있는 반지하 빌라에 산다. 지난해 계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그의 시 ‘반지하 엘리스’에 그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다. ‘무덤 한삽 깊게 판/반지하 집에서 죽음의 경전을 읽으며/그는 반가사유상처럼 고요히 앉아 작은 창을 보았다’

그가 최근 펴낸 에세이 ‘다시 사랑하고 싶은 날’(책 읽는 오두막)은 지친 마음을 도닥이는 손길 같다. 방 두 칸짜리 집에는 냉기가 흐르지만 그곳에서 시인이 써내려간 글은 온기를 머금었다. 조용히 홀로 헤매는 시간은 자신을 더 단단히 여미는 시간이며, 우리가 낭비하는 시간이란 외롭다고 생각하며 보내는 시간뿐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깊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모질고 거센 세상살이가 그의 삶만 비켜갈 리 없다. 10일 자택 근처 단골 카페에서 만난 시인은 “나도 쓰레기였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대입에 실패하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20대 시절을 보냈어요. 20대 후반에 취직은커녕 친구도 애인도 없는 서글픈 잉여인간이었죠. 그런 나날을 지나왔기에 힘든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쓰레기에서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자기 내면으로 향할 때 견디는 힘이 세어진다는 것을.”

오랜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일어서게 해준 것은 독서와 시 쓰기였다. 그는 가난도 외로움도 축복이 되려면 삶과 일에 대한 치열한 몰입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치열할 때에만 감성이 펄펄 살아 있고, 삶의 다양한 순간에 섬세하고 번뜩이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보통 사람들이 적어놓은 경구나 잠언을 보면서도 깜짝 놀란다고 했다. 작가란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들과 눈을 맞춰야 하는 장인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누구나 글을 쓰지만 작가는 아무나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하죠. 예술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밤마다 써요. 어깨에 힘주지 않는 글, 소탈하고 진솔한 글로 위안을 주고 싶어요. 나는 예술농사를 짓고 나누려고 태어난 장인이구나, 하는 사명감이 날로 커가요.”

작가는 지금껏 50개국을 돌아다녔다. 여행 이야기도 에세이의 한 장을 차지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나타(파이 위에 커스터드 크림을 얹은 빵)를 한입 베어 물고 딥키스 하는 기분을 느끼고,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남을 인정하는 겸허함에서 나오는 신비를 맛본다. 세계 곳곳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40여 장을 함께 실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에세이#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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