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현진]美 정치권의 코리안파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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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뉴욕 특파원
박현진 뉴욕 특파원
지난해 말 미국의 대표적 부촌인 뉴저지 주 알파인 대저택에서 열린 한인 정치인 후원행사장을 찾았다. 실내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후원자가 찾은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로이 조 변호사(33). 그는 올해 11월 실시될 연방의회 중간선거에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저지 5선거구 민주당 후보로 연방 하원의원 출사표를 냈다.

이곳은 6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공화당 스콧 개럿 의원이 버티고 있다. 정치 경험이 일천한 신출내기가 나온다고 하니 처음에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최근 선거전 구도는 해볼 만한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우려와 달리 후원금이 마지노선을 훌쩍 넘어섰다. 민주당에서는 다른 쟁쟁한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하자 6월 예비선거에서 그를 단일후보로 밀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선거구 조정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 선거구에 편입된 영향도 있지만 한때 무명이던 젊은 한인 정치인의 약진은 재미교포들의 투표 파워와 목소리가 높아진 덕분이다.

6일 미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가결된 동해 병기 법안의 시발점은 시민단체인 ‘미주 한인의 목소리’ 피터 김 회장이었다. 일사천리로 법안이 통과된 데는 버지니아 주 의회의 유일한 한국계로 3선 의원인 마크 김 의원(48·민주)의 역할이 컸다. 그는 법안 지지 연설에서 87세 노모의 일제강점기 경험담을 생생히 전해 동료 의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미 정치권에 한인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느냐 없느냐는 차이가 크다. 뉴욕 한인 커뮤니티는 수년간 설날을 공립학교 휴교일로 지정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매번 허공의 메아리로 그쳤던 이 사안은 론 김 뉴욕 주 하원의원(35·민주) 등이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촉구하면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이르면 올해 9월 이후부터 설날에도 공립학교 휴교를 추진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미 정치권에 한인 파워가 높아지는 것은 재미교포들의 이익 대변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과와 동해 병기 법안 등 당사국이 외교 갈등을 우려해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민감한 사안을 놓고 대리전이 미 정치권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런 문제는 인권을 위하고 역사적인 교훈을 일깨워준다는 보편적 가치를 명분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당사국들도 찬성이든, 반대든 개입하기 어렵다. 수년 전부터 시민참여센터 등 미국의 대표적인 한인 시민단체들이 설정한 이 전략은 최근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와 동해 병기 법안 처리 등에서 연일 미 정치 무대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본이 위안부 결의안과 촉구법안의 주역인 마이크 혼다 연방 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의 낙선 운동에 나섰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미 지자체와 주 의회 차원에서 한인 정치인들의 교두보는 넓어졌고 이제 연방의회를 넘보고 있다. 유일한 한국계 연방의원이었던 김창준 전 의원(공화·캘리포니아)을 넘어설 젊은 한인 정치인들의 도전에 희망을 걸고 싶다. 30, 40대의 젊은 패기를 갖고 부모로부터는 한국을, 자라오면서 미국을 함께 경험한 이민 1.5세대의 정치 도전기는 한국에도 큰 기회다.

뉴욕 주 상·하원도 버지니아 주 의회에 이어 동해 병기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을 제출한 의원들은 모두 론 김 의원의 ‘절친’들이다. 한국 정부도 못한 일들을 미 정치권에서 이루는 주역으로, 때로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한인 정치인들. 비록 공식적으로 이들을 지원할 방법은 없지만 한국 정부나 국민들이 관심의 끈까지 놓아선 안 되는 이유다.

박현진 뉴욕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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