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3>좋은 땅, 나쁜 땅, 이상한 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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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군의 어느 산골 마을 전경.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췄다. 박인호 씨 제공
강원 홍천군의 어느 산골 마을 전경.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췄다. 박인호 씨 제공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나와 가족의 전원 안식처를 찾고자 한다면 그 기준은 ‘보기에’ 좋은 땅이 아니라 ‘살기에’ 좋은 땅이어야 한다. 물론 보기에도 좋고 살기에도 좋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실 그런 땅은 극히 귀한 데다 이미 임자가 있다.

사람이 살기에 좋다면 좋은 땅이요, 보기에만 좋다면 나쁜 땅이다. 좋은 땅과 나쁜 땅은 어찌 보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려내는 것만큼이나 구분이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땅은 이상한 사람만큼이나 판단하기 애매한 땅이다.

경기 파주시에 가면 한강과 임진강을 끼고 있는, 높이 194m의 야트막한 심학산을 만나게 된다. 이 산과 교하 일대는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산에는 조성이 완료된 전원주택단지가 몇 곳 있는데, 그중 가장 고급스러운 단지 뒤편에는 작은 공동묘지가 붙어 있다. 혐오시설인 공동묘지에 접한 전원주택단지라면 보통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단지를 선택한 사람들은 오히려 이 작은 공동묘지를 ‘명당의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이렇듯 묘지 주변 땅이라도 어떤 사람들은 명당 터로, 또 어떤 사람들은 기피 터로 여긴다. 이중적인 잣대가 적용되는 셈이다. 대부분 시골 땅 주변에는 크고 작은 묘지가 많다. 물론 대규모 공동묘지라든가, 북향이나 습한 땅에 들어서 있어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미인박명(美人薄命). 미인은 불행한 일이 따르기 쉽고 요절하기 쉽다는 말이다. 이는 일부 ‘미인 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입지 조건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뭇 사람들의 욕심을 도발하고, 그 결과 기구한 운명에 처하기 쉽다. 강원 춘천시에 그런 땅이 있다. 동남향의 탁 트인 전망에 아름다운 주변 산수, 경춘고속국도와 복선전철 이용 등 많은 장점을 갖춘 미인 땅이다.

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뽐내다 보니 사기꾼, 투기꾼이 많이 꼬였다. 소송과 고발 등 각종 싸움의 후유증으로 깊은 상처만 남았다. 얼핏 한눈에 확 반할 만큼 좋은 땅이지만 그 내력을 들여다보면 나쁜 땅으로 드러나는 이상한 땅이다. 사람도 그렇겠지만 미인 땅이라고 무조건 좋은 땅은 아니다.

‘맹지 아닌 맹지’도 이상한 땅 중 하나다. 길이 없는 맹지는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나쁜 땅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맹지 중에서도 인접한 땅의 사용 승낙을 받아 길을 내거나, 개울이나 작은 하천 건너 다리를 놓으면 팔자가 바뀌어 일약 금싸라기 땅이 된다. 하지만 이런 땅의 운명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맹지 아닌 맹지를 가려내는 혜안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맹지로 남아 애물단지가 될 뿐이다.

지방 문화재보호구역의 땅도 장단점이 섞여 있는 이상한 땅이다. 수도권의 경우 문화재보호구역은 개발행위 및 건축허가를 받기가 까다롭다. 각종 규제도 가해진다. 따라서 땅값도 크게 낮다. 반면 시골의 문화재보호구역은 개발행위 허가에 시간이 좀 더 걸리고 관련 비용이 추가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집을 짓는 데 별 문제는 없다. 특히 축사 등 농촌 혐오시설이 들어설 수 없기에 쾌적한 주거환경을 되레 강화시켜 준다. 또한 문화재는 지역 및 개별 땅의 가치 상승에도 일조한다.

일반적으로 좋은 땅이란 수려한 자연경관과 접근성(고속국도 나들목, 복선전철역)을 갖춘 곳,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곳, 의료 교육 시장 등 농촌기반시설 이용이 편리한 곳, 배산임수 북고남저(北高南低) 남향 등 풍수지리 조건을 갖춘 곳 등이다.

반대로 이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면 나쁜 땅이다. 특히 지금까지 인기가 높은 강과 저수지, 그리고 계곡에 바로 접한 땅은 투자 측면에선 유리할지 몰라도 자연재해에 취약하고 높은 습도와 낮은 일조량 등 건강에도 좋지 않다. 나쁜 땅을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만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좋은 땅과 나쁜 땅은 대개 드러나 있지만 이상한 땅은 주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가꾸느냐, 또 그 땅의 팔자에 따라 좋은 땅이 될 수도, 나쁜 땅이 될 수도 있다. ‘양날의 검’과 같다고나 할까. 이를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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