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파고 넘는 기업들, 국내선 ‘세금 타깃’ 해외선 ‘규제 타깃’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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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산업계

《 한국 기업들의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심화되고 있다. 안에서는 정치권이 최저한세율(기업들이 각종 조세 감면을 받더라도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을 산정할 때 적용하는 세율)을 인상하기로 잠정 합의하면서 ‘사실상의 법인세 증세’ 청구서를 받은 상태다. 밖에서는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에 따라 한국 기업을 겨냥한 반(反)덤핑 등 수입규제 조치가 크게 늘었다. 재계는 “투자와 고용 확대를 위해선 경기활성화를 통한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인데 오히려 상황이 거꾸로 가고 있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내년에도 경기 회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고 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이 이어질 경우 경영 활동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 5년간 법인세 1조5000억 원 늘어난다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면서 세금까지 더 내라고 하니 국내에서 기업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치권이 30일 과세표준 ‘1000억 원 초과’ 대기업에 적용하는 최저한세율을 1%포인트 올리기로 잠정 합의하자 대기업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번 최저한세율 인상은 1년 만에 이뤄졌다. 과세표준 1000억 원 초과 기업(2011년 기준 27개 기업)의 최저한세율은 2008년 15%에서 2010년 14%로 1%포인트 인하됐다가 지난해 16%로 2%포인트 인상된 바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최저한세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서 향후 5년간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법인세는 1조4851억 원에 이른다. 이는 연평균 2970억 원으로 대상 기업 한 곳당 연간 100억 원 이상의 법인세를 더 부담하게 된다.

재계는 “이번 여야 합의는 세수 부족을 대기업에 떠넘기는 것으로 앞으로 고용과 투자 여력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투자와 고용 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걷으면 투자 감소, 신규 채용 축소 등의 악영향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재계, ‘투자 안 해 법인세 올린다’는 주장에 반발

한국의 법인세 부담이 적은 수준이 아닌데도 계속 기업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한국의 최고세율 대비 최저한세율은 72.7%로 미국(51.3%) 캐나다(51.7%) 대만(40.0%)보다 높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조세팀장은 “최저한세율을 설정한 국가는 미국 캐나다 대만 등 소수에 불과하다”며 “고용창출투자세액 공제 축소 등 각종 세금 감면 조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최저한세율 인상은 기업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최저한세율 인상 이유로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고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는 것을 꼽는다. 이에 대해 재계는 경기 침체가 계속된 데다 올해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각종 경제활성화 법안의 통과가 미뤄지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상현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기업의 투자는 가계의 저축처럼 기업의 고유 영역”이라며 “기업들이 투자처를 못 찾아 사내 유보금을 쌓아뒀다고 해서 세금을 더 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 ‘수입규제 타깃’ 된 한국 기업

한국 기업들은 해외에서는 ‘보호무역 빗장’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기업을 겨냥한 수입규제 조치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된 반(反)덤핑,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상계관세 등 각종 수입규제 조치는 총 33건으로 2002년(37건) 이후 가장 많았다. 2010년(19건)과 2011년(18건)에 비해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 경제가 점차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 주요국들이 여전히 시장보호 장벽을 높이고 있다”며 “한국 기업의 경우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수출 강세를 보였기 때문에 집중 견제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기업에 대한 수입규제가 전 세계 수입규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세계무역기구(WTO)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 전체 수입규제 건수 가운데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은 2009년 4.3%에서 올해 약 7.7%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는 철강·금속(12건)과 석유화학(10건) 분야에서 많은 수입규제 조치를 당했다. 두 산업 모두 전 세계적으로 공급과잉 문제를 겪고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 연구위원은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는 산업 특성상 생산시설을 증설한 뒤에는 물량 조절이 어렵기 때문에 쉽게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난다”며 “이 경우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많은 나라가 적극적인 수입규제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수입규제 조치는 전통적으로 신흥국이 선진국보다 적극적이다. 올해도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신흥국은 23건, 선진국은 10건의 수입규제 조치를 시행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선진국들의 수입규제 조치도 크게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임형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며 제조업의 중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선진국들이 제조업 육성에 나설수록 한국 같은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나라는 더욱 ‘규제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박창규 kyu@donga.com·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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