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칼럼니스트와 소통하는 오바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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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을 타고 하루에도 서너 개 주(州)를 넘나드는 빠듯한 유세 일정에도 빠뜨리지 않은 게 있었다. 지역 소재 언론인을 백악관에 초청해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다. 50개 주를 모두 돌아다닐 수 없다보니 언론 인터뷰로 유세를 갈음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 언론사들은 현직 대통령 인터뷰라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고, 대통령은 인터뷰 한방으로 지방에 흩어진 지지층을 적잖이 결집할 수 있었다. 한국이라면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난리가 나겠지만 미국 대선 유세전에서 현직 대통령인 여당 후보가 누릴 수 있는 프리미엄이다.

사실 오바마는 기자보다는 칼럼니스트를 좋아한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인터넷을 서핑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칼럼니스트가 쓴 글을 찾아 읽는 칼럼광(狂)이다. 가끔 백악관 참모들이나 행정부 장차관들에게 “그 칼럼니스트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도 해 장차관들이 칼럼니스트에게 자문할 때도 종종 있다. 사실을 평면적으로 전달하는 기자보다는 사안을 분석하고 의견을 내놓는 칼럼니스트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버드대 법대 재학 시절 법대학술지인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 편집장을 지낸 대통령은 칼럼니스트가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논리적 사고를 하는 오바마는 자신의 생각을 칼럼니스트에게 설득하는 것을 즐기는 모양이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뒤론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타임지 등의 유명 칼럼니스트를 백악관에 초청해 커피를 마시며 토론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한 달에 두 번가량, 한 번에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칼럼니스트들과 얘기를 나눈다. 자신의 정국 구상을 친(親)오바마 성향의 논객들에게 귀띔해주는 ‘백그라운드 브리핑(배경 설명)’이다. 골치 아픈 의회와의 관계와 내년 예산문제, 이민개혁법, 오바마케어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풀어야 할 현안들이 모두 테이블에 오른다.

대개 7, 8명이 참석하는데 오바마의 생각을 알려면 단골로 참석하는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가 워싱턴 정가에서 회자(膾炙)된다. 백악관에 초대된 논객들은 신문 잡지의 칼럼이나 자신의 블로그에 대통령 의중이 담긴 글을 올린다. 백악관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원칙)’라고 했지만 팩트(사실관계)를 보도하는 게 아니라 칼럼에 슬쩍 녹여 쓰면 별 뒷말이 없다고 한다, 백악관 기자들은 출입기자를 제쳐놓고 칼럼니스트를 부르는 데 대해 불만을 터뜨리지만 오바마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문사 논설실장과 방송사 해설실장을 단체로 청와대에 초청해 점심을 베풀며 얘기 나눈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러나 20명 이상이 모여 밥 먹는 자리에선 제대로 대화하기 어렵다. 매일 밤 참모들이 올린 보고서에 묻혀 사는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듣고 혜안을 가지려면 언론인과 대화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밥자리든 티타임이든 상관없다. 처음엔 대통령과 생각이 비슷한 칼럼니스트부터 시작해 가끔 반대편 목소리를 내는 논객도 초청해 커피 한잔을 놓고 난상토론을 해볼 만하다.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말처럼 ‘자랑스러운 불통(不通)’이라는 건 세상에 없다. 대통령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고 대통령은 설명할 책무가 있다. 새해엔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입을 꾹 다무는 ‘전략적 침묵(strategic silence)’에서 벗어난 대통령을 보고 싶다. 그 출발을 몇몇 칼럼니스트와의 대화에서 풀어보면 어떨까.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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