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손 꼭 잡고 온 秋 “음지의 선수들 돌보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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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3000만달러 사나이 금의환향
“좌투수 공포 심해지자 정신과 치료… 산후조리 한번도 못한 아내에 미안”

“애리조나 시간으로 새벽 1시 반이었다. 텍사스와 계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18세에 미국으로 와 13년 동안 겪었던 모든 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다.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웠고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또 다른 야구 인생이 시작됐다.”

추신수(31·텍사스)가 금의환향했다. 지난 시즌 신시내티에서 뛴 그는 20홈런-20도루-100볼넷-100득점을 동시에 달성한 뒤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추신수는 텍사스와 7년간 총액 1억3000만 달러(약 1379억 원)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30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추신수는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사파이어볼룸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왼손 투수에게 약하다는 평가가 한때 그를 힘들게 했다. 그는 왼손 투수에 대한 공포가 기술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신적인 것’이었다고 했다. 추신수는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 하나 때문에 반쪽짜리 선수가 되긴 싫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도 만나봤고 왼손에 강한 타자에게 조언도 들어봤지만 소용없었다. 한창 데드볼을 맞을 때는 투수가 움직이기만 해도 공이 내게 날아오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힘든 와중에 추신수를 잡아준 건 가족이었다. 추신수는 “그때 가족을 생각했다. 여기서 겁을 먹고 물러서면 우리 가족이 밖으로 나앉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고맙고도 미안한 사람은 ‘내조의 여왕’ 하원미 씨다. 하 씨는 2007년 팔꿈치 수술 후 미국 생활을 포기하려던 추신수를 붙잡았다. 그 힘으로 그는 예정보다 2개월이나 빨리 재활을 끝내고 복귀할 수 있었다. 추신수는 “아이 셋을 낳을 때 곁에 있었지만 부인은 남들 다 하는 산후조리를 한 번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18세의 나이에 야구 하나만 보고 미국으로 건너온 그에게 외로움은 가장 큰 적이었다. 그는 “사회생활 경험도 뒤떨어지고 친구도 없이 생활하다 보니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이해할 수 있다”며 “이제는 정말 자리를 잡았으니 그런 선수들을 챙기고 돌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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