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우선이다]불법시위자는 풀려나고 경찰만 문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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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바로 세워라]
권위 안서는 공권력 왜

28일 열린 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는 7일 민노총-통합진보당이 주축이 된 ‘박근혜 정권 규탄 비상시국대회’에 이어 3주 만에 또다시 서울 도심 교통을 마비시켰다.

집회에 앞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집회에 어떤 명분도 당위성도 없는 만큼 단호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경찰도 하루 전인 27일 “불법 집회로 변질되면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엄정 대응’의 실체는 ‘청와대 방어’에 불과했다. 경찰은 세종로 사거리 등에서 시위대가 청와대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저지했을 뿐 7000여 명의 시위대가 무단으로 차로를 점거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처럼 불법 시위가 되풀이되는 것은 “일단 점거하고 보자”는 후진적인 집회 문화와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 집회·시위의 자유를 폭넓게 해석하는 최근 법원의 잇따른 판결, 갈등이 폭발에 이르기 전 타협을 이끌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의 미숙한 대응 등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 후진적 시위 문화 여전

불법 시위의 1차적인 책임은 “떼쓰면 통한다”는 후진적 시위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민주화가 이뤄졌음에도 노조 등 일부 단체들은 법과 제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과거 독재정권과 투쟁하던 구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들은 친노조 성향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에도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국내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 사이에 법질서를 존중하지 않고 공권력을 경시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퍼져 심각하다는 분석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국민대 김병준 교수(행정학)는 “사법부가 철도 노조원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면 해당자들은 응하든가 최소한 언제 출두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법질서를 무시하는 사회는 언제든 폴리스라인이 무너질 수 있는 ‘위험사회’”라고 지적했다.

○ 경찰은 소극적 대응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강봉균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찰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시위대가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큰 문제가 없으면 이를 사실상 방치했다”면서 “위법한 행위에는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진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시위대가 차로를 점거하려 시도할 경우 시위대와의 격렬한 충돌을 각오하지 않는 한 이를 완전히 막는 것은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은 의경 버스로 ‘차벽’을 만들더라도 일반 시민과 경찰 병력이 이동할 수 있도록 차간 간격을 띄워 횡단보도나 버스 정류장 앞 등에 ‘숨구멍’을 열어놓을 수밖에 없다. 실제 28일 집회에서 시위대가 서울 태평로를 점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숨구멍’을 파고들어 ‘폴리스라인’을 무너뜨린 것이었다.

더구나 불법 파업 현장을 경비하던 현장 경찰관이 “위법한 법 집행을 했다”며 책임을 지고 법원 판결에 따라 옷을 벗게 될 위기에 놓인 사례도 있어 현장 경찰의 강경 대응만을 주문하기도 어렵다.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807전투경찰대 중대장(경감)이었던 류동혁 경정(현 경기지방경찰청 기획예산계장)은 직권 남용죄로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 집행 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해 6월 26일 정문에 있는 회사 측 직원과 충돌을 우려해 공장 정문 방향으로 이동하는 노조원 등 6명을 둘러싼 데 대해 불법적인 체포를 한 것으로 판결을 받은 것이다. 류 경정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원심이 확정될 경우 경찰복을 벗어야 한다.

집회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한 경찰은 “당시 현장은 노조가 공장을 무단 점거하고 볼트를 발사하는 등 전쟁터와 다름없던 상황이었다”며 “류 경정에 대한 판결 뒤로 집회 경비를 하는 경찰 지휘관들이 ‘나도 잘릴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 규칙 위반에 관대한 법원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취지로 해석되는 최근 법원의 판결도 불법 집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박관근)는 서울역 인근에서 집회를 하다가 신고한 지역을 벗어난 김정우 전 쌍용자동차노조 위원장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10월 무죄를 선고했다. 집회가 일요일 이른 시간에 이뤄져 상대적으로 교통량이 적었고, 반대방향 차로 통행에 지장이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강을환)도 최근 청와대 근처에서 미신고 집회를 하다 경찰의 해산명령을 따르지 않은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김모 씨 등 3명에게 각각 벌금 2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30여 명에 불과한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로부터 직선거리로 200여 m 떨어진 곳에서 구호를 외친 것 외에는 폭력 또는 물리력을 행사하거나 교통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 폭력 시위 단체 집회 불허해야

도로점거 등 불법행위를 벌였던 단체가 집회를 개최하더라도 사전에 이를 금지하기도 어렵다. 집시법 제5조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하고 있지만 이를 근거로 집회를 금지하려면 ‘명백성’이 증명돼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폭력 시위를 벌였던 단체라고 해서 이번에도 폭력시위를 벌일 소지가 명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집시법을 적용할 경우 향후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소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불법 시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폭력 단체들의 시위 제재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조종엽 jjj@donga.com·강경석·백연상 기자

<도움말 주신 분들> (가나다순)

강봉균 전 기획재정부 장관, 강영진 성균관대 갈등해결연구센터장,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전 대통령정책실장),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성재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군기 홍익대 교양학부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불법시위자#공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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