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1964년 서울 실업자들… 2013년 서울 니트족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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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에 비한다면 거리가 우리에게 더 좋았던 셈이었다.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 그것이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었다.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하서·2009년) 》

한국 멜로영화의 고전 ‘맨발의 청춘’은 1964년 청춘들의 심금을 울렸다. 권투 잡지로 시간을 죽이는 건달 두수(신성일)와 이층 양옥집에 사는 외교관 딸 요안나(엄앵란)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얘기였다. 이후 뒷골목 인생과 여대생의 계층 차를 뛰어넘은 러브스토리는 1960년대 내내 다양하게 변주됐다. 하류층 실업 남성들의 판타지에 조응한 것이었다.

그 시절 실업률은 30%에 육박했다. 한국의 단골 휴양지가 된 태국이나 필리핀보다 못살았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모여들었지만 도시라고 일자리를 주진 못했다. 1963년 최초로 파독 광원 500명 모집에 전국에서 4만6000명이 응모했다. 이 중 상당수는 대졸 이상의 학력이었다. 희망과 불안이 공기처럼 떠돌던 시대였다.

작가가 그린 ‘서울, 1964년 겨울’이 그랬다. 육군사관학교에 낙방하고 구청에 근무하는 ‘나’와 부잣집 장남인 대학원생 ‘안’은 선술집에서 겉도는 말수작만 한다. 장례비가 없어 아내의 시신을 병원에 판 ‘사내’의 돈 털어내기에 합류한 뒤 그를 짐짓 걱정하면서도 셋은 여관 각방에 머문다. 이튿날 자살한 사내를 두고 둘은 무관한 듯 여관을 빠져나온다. 스물다섯 ‘나’와 ‘안’은 도망치며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포장했지만 ‘사내’의 죽음에 대해 끝까지 무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서울 2013년 겨울, “안녕들 하십니까?” 손글씨 대자보 열풍이 거세다. 한 고려대생이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라며 사회문제에 눈감는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적은 대자보를 붙인 게 시작이었다. 대학가에, 여의도에, SNS에 릴레이로 “안녕들”이 내걸리고 있다.

‘수출 8대 강국’이란 화려한 이름 아래 구직을 포기한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100만 명을 넘어선 현실과 무관할까.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서울#1964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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