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미역국이 팔팔 끓고 있는 바로 지금이 기적의 순간 아닐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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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음식 준비에 분주한 여인의 뒷모습이 있다. 가스불을 줄여 밥 뜸을 들이는구나 싶더니 어느새 손에 국자를 들고 쇠고기 미역국의 간을 살핀다. 다듬고 볶고 데치고 부치며 잔치 음식 여럿을 동시에 만들어 내는 능숙한 손길이 마치
부모나 남편, 그도 아니면 아이의 생일이라도 맞은 걸까? 그런데 웬걸, 여인이 차리는 생일상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자축 생일상을 보고 있는 이 여인의 뒷모습이 그리 쓸쓸해 뵈지만은 않는 것은 왜일까?

이달에 만나는 시 12월 추천작으로 김소연 시인(46·사진)의 ‘생일’을 선정했다. 등단 20년을 맞는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문학과지성사)에 실렸다. 추천에는 손택수 이원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시인이 참여했다.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시인이 생일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저녁,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자기 생일상을 손수 준비하다가 든 생각이 시가 되었다. 시인은 “온 가족이 함께 먹을 미역국을 끓이고 있자니 ‘뽀얀 미역국이 끓고 있는 바로 지금이 기적의 순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남들이 ‘일상’이라 부르는 밥이 익고 국이 우러나는 시간에 ‘기적’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생일상을 차리다 보면 서글퍼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시인은 “내게는 슬픔 또한 삶이 주는 통과의례에 가깝다. 슬픔은 벗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겪어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택수 시인은 “세계의 비참과 일상의 남루에 뿌리 내리되 대지의 육중함을 가뿐히 들어올릴 줄 아는 시인의 숨결은 그 자체로 꽃이다”라고 평했다. 장석주 시인은 “김소연의 시들은 어떤 헐벗음에 대해 말할 때 섬세한 슬픔을 머금는다. 헐벗음은 주체의 처지를 직접 겨냥하여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단지 기쁨이나 보람에 닿지 못하는 감정상의 그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이원 시인은 “김소연은 ‘장미’라고 쓰지만 ‘절규’라고 읽히는 ‘감염의 언어’를 만들어 냈다. 더욱이 이 감염은 예상 못한 곳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고 말했다.

이건청 시인은 문효치의 시집 ‘별박이자나방’(서정시학)을 추천하며 “벌레나 나비, 풀꽃, 새와 같은 사소한 것들을 호명해 당당한 존재의 자리에 바로 세운다”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원주 치악산 산골에서 흙집을 짓고 산다는 정용주의 시집 ‘그렇게 될 것은 그렇게 된다’(시인동네)를 추천했다. 그는 이 시집에 대해 “고독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치유할 수 없는 참혹한 상처를 오로지 시로 견디며 스스로 제 고독을 완성시켰다”고 평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김소연#생일#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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