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뜸하자… 두 얼굴의 중개업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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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계약서엔 수수료율 0.5%… 법적상위 확인서엔 몰래 0.9%

전세 매물이 귀한 임대시장에서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더 받아주겠다”거나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을 테니 매물을 달라”고 하는 중개업소 때문에 세입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DB
전세 매물이 귀한 임대시장에서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더 받아주겠다”거나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을 테니 매물을 달라”고 하는 중개업소 때문에 세입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고 있다. 동아일보DB
1년 가까이 안 팔리던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가 겨우 나가면서 올 10월 옆 단지로 이사한 김모 씨(42). 집을 넓힌 기쁨도 잠시, 중개수수료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다.

김 씨는 집을 처음 내놓았던 A중개업소에 사고파는 계약을 모두 맡겼다. 그 대신 중개수수료는 새로 산 7억6000원짜리 아파트에 대해서만 수수료율 0.5%를 적용해 380만 원을 내기로 했다. 거래가 뜸한 요즘 중개업소도 계약 2건을 맡을 수 있으니 선뜻 동의했고 이 내용을 계약서에 써넣었다. 현행법상 6억 원 이상 주택의 매매거래는 중개수수료율 0.9% 내에서 소비자와 중개업소가 협의해 결정하게 돼 있다.

이사를 마치고 중개수수료 380만 원을 내자 중개업자는 갑자기 돈을 더 달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들이밀었다. 김 씨는 계약 당시 중개업자에게 주택 권리관계, 토지이용계획, 입지 조건, 건물시설 상태, 벽면·도배 상태 등이 적힌 서류라는 설명만 대충 듣고 도장을 찍었다. 그런데 이 확인서 마지막에 중개수수료를 기재하는 항목이 있었고 중개업자가 수수료율 0.9%를 써놓은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사고판 아파트 2채에 대해 1200만 원이 넘는 수수료를 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법적으로 매매계약서보다 이 확인서가 상위에 있었던 것. 중개업자는 이를 근거로 김 씨를 상대로 소송까지 내면서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 씨는 “이번 일을 당하고 수소문해 보니 비슷하게 당한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 말했다.

부동산 장기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집값 하락과 전세금 상승에 시름하는 주택 수요자들을 두 번 울리는 중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오피스텔 투자에 나섰던 김모 씨(53)는 계약 직전에 이를 발견한 사례다. 계약을 앞두고 중개업자가 건넨 중개대상물 확인서에 수수료율 0.9%가 프린트돼 있었다. 김 씨가 항의하자 중개업소는 “자동적으로 서류에 찍혀 나오는 것”이라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실랑이 끝에 김 씨는 애초에 합의했던 수수료율(0.7%)로 바꿨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중개대상물 확인서는 수수료뿐 아니라 집의 현재 상태에 대해 거래 당사자들이 합의해 증거로 남겨 놓는 법적 서류”라며 “나중에 집에 하자가 있을 때도 이를 근거로 중개업자나 매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물이 턱없이 부족한 전세시장에서는 세입자들이 ‘약자’의 설움을 겪는 사례가 많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사는 이모 씨(35)는 석 달을 넘게 기다린 끝에 얼마 전 전세로 나온 깨끗한 아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집을 보러 간 날 계약을 하려고 하자 중개업자는 “다른 사람은 중개수수료를 0.9% 주기로 했다”며 딴청을 피웠다. 법적으로 임대차 계약의 수수료율 상한선은 0.8%. 매물을 놓칠까 걱정된 이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요구하는 중개비를 주고 계약했다.

이 씨는 “중개업자가 집주인한테는 전세금을 높게 받아줄 테니 매물을 맡겨 달라고 했다더라”며 “중개업소가 전세금 상승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전세 매물을 얻으려고 집주인에게는 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는 중개업소도 많다. 공덕동 S공인 정모 대표는 “불황에 중개업자도 먹고살아야 하니 힘 있는 집주인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법적 한도보다 수수료를 더 받으면 영업정지 같은 행정처분을 받게 돼 요즘 이런 사례는 많이 줄었다”며 “수수료를 과다 청구했다면 영수증 같은 증거를 남겨서 시군구청에 신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중개업소#중개수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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