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은 회장 “배고픈 노인 서러워할까봐… 급식소 간판 안걸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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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 밥지으며 40여년 베풀기 한길봉사회 김종은 회장

한길봉사회 김종은 회장(서 있는 사람)은 매일 점심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이 할머니에게 식사를 가져다 드리며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한길봉사회 김종은 회장(서 있는 사람)은 매일 점심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고 있다. 김 회장이 할머니에게 식사를 가져다 드리며 웃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5층 건물 지하 1층. 신발장에 64켤레의 신발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슬리퍼부터 뒷굽이 낡은 구두, 천이 다 해진 운동화까지 다양한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132m²(약 40평) 남짓한 공간엔 탁자 28개와 철제 배식대가 전부다. 점심 식사를 하러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 80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랬다. 대부분 혼자 살며 끼니를 걱정하는 노인들이다. 그들은 이곳을 ‘마음의 허기까지 채우는 곳’이라 말한다. 녹색 앞치마를 두른 60대 중반의 남자가 할머니들 앞에서 ‘뽕짝’에 맞춰 춤을 췄다. 한길봉사회 김종은 회장(65)이다. 이 건물엔 간판조차 없다. 김 회장은 “‘무료급식소’ 간판이 있지만 걸지 않았다. 그걸 보고 할머님들이 위축되실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간판이 없어도 매일 150명이 넘는 노인이 급식소를 찾는다. 그가 이런 봉사활동을 해온 지 40년이 넘었다. 24세 때인 1972년 할머니 할아버지 6명에게 1000∼2000원씩을 손에 쥐여 준 것이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동네 깡패들이 노인들에게서 돈을 빼앗았다. 이후 서대문구 서대문공원에서 200∼300명의 노인에게 무료 식사를 대접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선 수차례 지원금을 신청하라고 제안했으나 그는 “내 돈으로 도와야 봉사지 정부 돈으로 돕는 건 봉사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보육원으로 보내졌던 그는 열두 살 무렵 충남 부여군에서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신문팔이, 껌팔이, 풍선장수 등을 하며 연명했다. 배고픈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잘 아는 그였다. 그러던 중 재봉 일을 배우게 됐고 헌 재봉틀 10대로 의류제조업체 ‘영 패션’을 차렸다. 그는 속옷, 추리닝 등을 만들어 번 돈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끼니를 대접해 왔다.

위기도 있었다. 2005년 11월 한 단체로부터 ‘노란 점퍼 30만 장을 보름 안에 납품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김 회장은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물량을 제작했지만 옷을 찾아가지 않아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 충격으로 2008년 1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 이틀 만에 의사 몰래 퇴원했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내가 그만두면 노인들 배가 고파 안 된다”고 말했다.

식사를 하러 온 권계남 할머니(84)는 “20년째 식사를 얻어먹고 있는데 김 회장은 ‘지상의 하느님’”이라며 웃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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