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 보던 勞使, 이젠 한 곳을 함께 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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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진重 영도조선소 5년 만에 상선수주로 신바람

13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한 생산직 근로자가 해군 차기상륙함(LST-Ⅱ)에 들어갈 상륙정을 조립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조선소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한진중공업 계열 선박엔지니어링 회사인 TMS 본사에서는 설계팀이 올해 7월 수주한 상선을 설계하기 위해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한진중공업 제공
13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한 생산직 근로자가 해군 차기상륙함(LST-Ⅱ)에 들어갈 상륙정을 조립하고 있다(왼쪽 사진). 같은 날 조선소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한진중공업 계열 선박엔지니어링 회사인 TMS 본사에서는 설계팀이 올해 7월 수주한 상선을 설계하기 위해 도면을 살펴보고 있다. 한진중공업 제공
“감기가 언젠간 낫듯이 열이 나면 언젠간 식듯이/…/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내 자신을 달래며 하루하루 버티며 꿈꾼다.”

가수 ‘더 원’이 노래 ‘지나간다’를 부르는 장면이 스크린에 나오자 강당에 모인 수백 명은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노래가 끝나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불현듯 한쪽에서 터져 나온 박수 소리는 이내 주변으로 퍼져나가 강당을 가득 메웠다.

올해 4월 1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본사에서 열린 최성문 조선부문 사장의 취임식은 이렇게 시작됐다. 최 사장은 당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아픔은 곧 지나갈 것”이라며 “그러려면 회사와 노조는 이제 하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월여가 지난 요즘 ‘대한민국 조선 1번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1937년 설립)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지겨운 순환 휴직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신바람이 났다. 한진중공업 계열 선박엔지니어링 회사인 TMS는 5년 만에 수주한 상선을 설계하느라 휴일과 저녁을 반납했다.

○ “일거리가 있어야 노조도 있죠”

13일 영도조선소에서 만난 한진중공업 방산생산팀 직원 손동인 씨(42)는 지난해 3월부터 8개월간 월급의 55%만 받고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회사에 일거리가 없어 근로자들이 돌아가면서 휴직을 한 탓이다. 그는 다른 조선소에서 임시로 일하다가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대리운전도 했다. 지난해 말 복귀한 뒤에는 해군 차기상륙함(LST-Ⅱ) ‘천왕봉함’ 건조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손 씨는 “7월에 상선을 수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턴 같은 일을 해도 신이 난다”며 “본격적인 선박 건조는 내년 하반기(7∼12월)가 돼야 시작하겠지만 벌써부터 현장 분위기는 살아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진중공업의 생산직 근로자는 모두 800여 명이다. 그러나 절반인 400여 명은 현재 유급 휴직 상태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사실 2년 전 본계약 직전에 무산됐던 컨테이너선 4척만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직원들이 돌아가며 휴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한진중공업은 2011년 7월 아시아 지역의 한 선주와 47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급 컨테이너선 4척 건조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그러나 본계약 체결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크레인 농성 등으로 한진중공업 노사 갈등이 극에 달하자 선주 측이 납기일을 맞추기 힘들 것으로 판단해 발주를 취소한 것이다.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 중인 공문규 씨(44)는 “당시 노조와 회사는 서로 다른 곳만 바라봤다”며 “그러나 지금은 근로자들 사이에 ‘힘든 시기를 함께 극복하고 회사가 잘되면 성과를 나누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다.

○ 바빠진 상선 설계팀

영도조선소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TMS 본사는 조선소보다 더 활기찼다. 한진중공업이 7월 15만 t급 유연탄 수송선 4척을 수주한 뒤 곧바로 선박 설계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조현찬 TMS 설계실장은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에서 건조할 배를 설계할 때와 영도조선소 수주 물량을 설계할 때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며 “오랜 수주 공백에 따른 현장의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설계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통 상선 설계 기간은 11개월 정도다. 그러나 TMS는 10개월 안에 모든 설계를 마치기로 했다. TMS는 이를 위해 일반적인 상선 설계 때보다 50명 많은 150명을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했다. 박제형 구조설계팀 부장은 “한진중공업으로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배인 만큼 설계 작업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 노사 소통 위해 사보 부활

‘진정한 소통과 공감을 위해 다시 시작합니다.’

이달 중순 발간된 한진중공업그룹 사보에 나오는 이수신 한진중공업홀딩스 사장의 메시지다. 이 회사 사보는 2010년 6월호 이후 중단됐다가 38개월 만에 다시 나왔다. 이 사장은 “3년여의 침묵을 깨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보를 보고 더없이 기쁘고 설레는 것은 바로 공감의 장을 마련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며 “한진중공업그룹 가족의 하나 된 힘, 공감의 울림을 보여주자”고 당부했다.

최근 부산에서는 한진중공업 살리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 지역 기관장들도 발 벗고 나섰다. 과거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 중 가장 규모가 컸던 한진중공업이 위기에 빠지면서 부산 경제도 활력을 잃었다는 게 그 이유다.

최 사장은 “한진중공업의 완벽한 부활을 위해선 빠른 시일 내에 추가 수주가 이뤄져야 한다”며 “올해 예상 매출액은 3000억 원 정도지만 4, 5년 후에는 2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1만 TEU급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8만 평에 불과한 조선소 용지를 넓히는 마스터플랜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한진#영도 조선소#한진 상선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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