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재판 과정 TV-인터넷 중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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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낮은 편입니다. 사법부의 신뢰도를 묻는 한 설문조사에서는 조사대상 1106명 중 77.2%인 854명이 ‘사법부가 불공정한 판결을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사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6.5%(182명)에 그쳤습니다. 이 때문인지 법조계 안에서도 재판 과정을 TV와 인터넷으로 중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재판의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지요. 반면 반대쪽은 피해자 및 피의자의 인권 훼손과 옐로 저널리즘에 의한 피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요? 또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전문가 두 분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

▼ 국민 알권리 위해 재판 공개는 당연히 필요 ▼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3월 대법원은 사법사상 최초로 공개변론의 재판 전 과정을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도록 했다. ‘열린 법원’을 위한 이런 노력에 대해 여론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하급심 재판까지 전부 생중계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당장 시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중요 사건의 경우 빠른 시일 내에 1심부터 TV나 인터넷을 통하여 생중계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 알권리 충족을 위해서 재판 과정은 그대로 공개될 필요성이 있다.

그동안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의 보도를 보면 취재진에 둘러싸여 법원 정문을 통과하는 소송 당사자의 모습이나 재판 시작 전까지 문틈으로 보이는 법정 모습이 전부였다. 법정 문이 닫히면 오로지 말이나 글로써만 재판 과정에 대한 정보가 제공될 뿐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하물며 말을 요약해서 글로 남기게 되면 의미의 변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판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은 알권리가 충족되지 못해 답답했다. 직접 보고 듣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알권리를 충족시켜줄 방법은 없다.

재판공개가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공개재판주의의 실질적 구현을 위해서이다.

공개재판이란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재판과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도 방청하게 하는 제도이다. 국민은 누구라도 관심이 있는 재판에 대해 법정을 방문하지 않아도 재판의 진행 과정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개재판주의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TV와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법정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재판을 공개하는 것으로 공개재판주의를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셋째,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 확보를 위해서도 재판 공개는 필요하다.

판사가 여론재판을 할 위험성이 있으므로 재판의 중계를 반대한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판사들의 능력과 양심을 모욕하는 주장이다. 물론 판사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오판을 할 수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3심제를 두고 있다. 상급심에서 파기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여론에 휘둘려 오판을 내릴 판사는 없다. 재판이 공개되면 판사들은 전관 출신 변호사에 대한 예우보다 지켜보는 국민의 눈을 의식해 더욱더 신중하고 공정하게 재판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넷째, 국민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필요하다.

판사의 부적절하고 고압적인 언행이 문제가 되어 언론에 보도된 경우가 많다. 필자는 법정에 수없이 출입하는 변호사로서 단언하건대 막말 판사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일부’라도 있다는 것이 문제다.

‘막말 판사’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법정이 사실상 폐쇄된 공간이라는 것 때문이다. 만약 재판 절차를 모두 녹음·녹화한다면 막말 판사는 사라질 것이다.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에 침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있지만 이 역시 이미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하여는 피고인의 얼굴이나 재판의 중요 내용이 전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적절한 보완책을 마련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대의 흐름은 재판의 방송과 중계를 바라고 있다.

일부에서는 재판의 방송과 중계는 영미법계 국가들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대륙법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구별이 절대적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이며, 오히려 국민의 인권 보장과 재판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서로 융합되고 있는 현상을 무시하는 견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형사재판에서 배심원제도 같은 맥락의 국민참여재판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으며 대법원 역시 공개변론을 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하는 결단을 하였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하여는 하급심까지도 중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시대의 흐름보다 다소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법원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찬희 전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 필자 소개 ::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과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법무법인 정률의 변호사와 가천대 법대 겸임교수,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알권리 이전에 국민 사생활이 침해된다 ▼


윤배경 변호사
윤배경 변호사
재판을 TV 등으로 방송·중계하자는 의견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웠지만 ‘사법부를 믿지 못 하겠다’는 게 속내다.

그동안은 대개 사법부가 이런 주장을 일축해버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작금의 동향을 보면 오히려 법원이 더 적극적인 듯하다. 최근 김태형 성남지원 판사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투명성을 높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재판 과정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재판방송을 금지하고 있는 규칙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합리적이지도 합당하지도 않다.

우선 재판 과정을 방송·중계함으로써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우리나라에서 재판은 이미 원칙적으로 공개된다. 이해관계인은 물론 누구든 재판의 진행상황을 참관할 수 있다. 올 1월부터는 형사판결문을 비롯한 소송기록도 공개되고 있다. 재판의 투명성은 현행 공개재판과 기록 접근 등으로 충분히 확보된다. ‘재판 과정에 대한 불분명한 정보난립’은 오히려 재판이 일반에 공개되므로 가능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나오는 판사들의 부적절한 언행을 재판이 공개되면 막을 수 있으리라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방송국의 카메라를 의식해 판사가 언행을 조심할 것이라는 발상이야말로 사법부의 자정 능력을 시험하는 말이다. 이는 폐쇄회로(CC)TV를 장착해 판사의 재판 과정을 모니터링하겠다는 생각만큼이나 유치하다.

재판 과정을 방송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주장도 의문이다. 재판의 방송·중계를 허용하는 나라는 미국, 호주 등 일부 영미법계 국가에 국한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륙법을 채택하는 국가가 법정을 방송에 노출시키는 경우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하급심 재판을 방송·중계하면서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심인 하급심은 대법원의 공개변론을 중계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상고심에서는 법률적인 쟁점을 다루기에 소송 당사자의 사적 영역이 문제될 여지가 최소한에 그친다. 반면 하급심에서는 당사자의 전 인격과 생활상이 노출되게 마련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피고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희생시켜야 할 것인가?

하급심 재판에 대한 중계를 허용하면 ‘옐로 저널리즘’이 판칠 염려가 있다. 이는 미디어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재판을 방송·중계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상업화한 게 미국의 코트TV(Court TV·현재의 트루TV)였다. 코트TV가 가장 재미를 본 것은 O J 심프슨 사건 때였다. 전직 프로축구선수였던 그는 전처와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미국 3대 방송사와 CNN이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재판을 생중계한 코트TV였다. 8개월의 심리 끝에 배심원단은 심프슨이 무죄라고 평결했다. 피고인이 무죄로 풀려나자 일부 비판론자들은 재판의 법정 중계를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재판을 심리한 판사마저도 법정에 들어찬 녹화와 방송용 카메라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다소 영향을 받았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법정 중계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인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을 위협한다. CNN의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가 ‘낸시 그레이스’다. 코트TV로 잔뼈가 굵은 앵커가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범죄자의 악행을 고발하고 피고인(피의자)의 법적 주장을 탄핵하는 데 중점을 둔다. 특유의 시사성과 탐사보도성이 결합되는지라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이 쇼는 피고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피고인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한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방송의 위력이 갈수록 강해지는 우리 현실에서 미국과 같은 미디어 산업이 하급심 재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단언컨대, 재판이 막장 드라마로 전락하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윤배경 변호사
:: 필자 소개 ::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장&리 법률사무소, 법률사무소 진리,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를 거쳐 현재 법무법인 율현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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