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호 “머리카락 정전기 일어난 순간 아이디어 반짝”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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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 군용 ‘깔깔이’ 개발… 고졸출신 밀레 본부장 송병호씨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밀레 본사에서 송병호 밀레 생산관리 본부장이 자신이 개발한 ‘세로누빔 기술’을 적용한 시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기술은 2010년 국방부가 도입한 군용 방한내피에 사용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밀레 본사에서 송병호 밀레 생산관리 본부장이 자신이 개발한 ‘세로누빔 기술’을 적용한 시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기술은 2010년 국방부가 도입한 군용 방한내피에 사용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어, 오리털도 머리카락이랑 성분이 비슷한데…. 이걸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까.”

2008년의 어느 날. 당시 한 패션업체 개발부장으로 일하던 송병호 밀레 생산관리본부장(57)은 집 욕실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빗질을 하는 중 정전기 때문에 머리카락이 빗에 달라붙는 걸 본 그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스쳤다.

당시 그는 기존 다운(오리털, 거위털로 만든 방한 소재) 재킷과 전혀 다른 제품을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날씬해 보이면서 동작이 편한 누빔 재킷을 만들려면 세로로 재봉질을 해야 하지만 안에 든 다운이 내려앉아 뭉치는 걸 막으려면 가로로 누비는 방법을 피할 수 없었다.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계속한 끝에 송 본부장은 겉감과 안감을 두 겹으로 겹쳐 옷감에 미세한 정전기를 일으키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정전기로 옷감에 붙은 다운 소재가 아래로 쏠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는 ‘세로 퀼팅형 다운재킷 및 제작 방법’이라는 이 기술로 2009년에 특허를 받았다.

이 기술은 2010년 군대에 도입된 신형 방한내피, 일명 ‘깔깔이’에 적용됐다. 당시 국방부는 여러 스포츠업체의 제안을 비교한 끝에 송 본부장이 개발한 특허를 보유한 업체가 제시한 세로 누빔 제품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세로 누빔 제품이 가로 누빔 제품보다 좌우로 잘 늘어나 활동성이 좋고 몸에 잘 밀착되기 때문에 보온성도 뛰어나다는 이유에서였다.

송 본부장이 의류업에 처음 뛰어든 것은 38년 전인 1975년. 당시 19세이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 부평공단의 봉제공장에서 ‘시다’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더 높은 목표를 갖게 된 것은 공장에서 가끔 마주치곤 했던 대형 의류업체의 기술자들 때문이었다.

송 본부장은 “외국인 바이어와 함께 하청업체 공장을 찾아와 기술과 품질에 대해 논하는 기술자들의 모습이 한없이 멋있어 보였다”며 “그럴 때마다 언젠가 일류 기업의 멋진 기술자가 되겠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고 말했다.

송 본부장은 아직도 ‘아이디어 뱅크’다. 그는 지난해 밀레로 직장을 옮긴 뒤에도 신기술을 개발했다. 다운재킷을 재봉할 때 부직포와 비슷한 소재의 ‘패딩 테이프’와 폴리에스테르 테이프를 넣어 실과 천 사이로 털이 빠져나올 공간의 크기를 줄인 ‘털빠짐 보완 기술’로 그는 11번째 특허를 개발했다.

송 본부장의 자랑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0년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며 의류업계에 뛰어들었기 때문. 송 본부장은 “아들이 아버지를 한 명의 기술자로 인정해주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송병호#밀레#신형 방한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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