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 미용부터 오장육부 수술까지 ‘항공기 종합병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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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부산 테크센터 重정비-페인팅 작업 현장

3일 부산 강서구 대저2동 대한항공 테크센터 격납고. 보잉 747-400과 에어버스 330 여객기가 ‘속살’을 드러냈다. 날개 아래 엔진이 있는 공간은 텅 비어 있었다. 화물칸 설비도 뜯어낸 상태여서 각종 튜브와 밸브 등 내부가 훤히 보였다. 특히 에어버스 330은 수직 꼬리날개까지 분리됐다.

사다리를 타고 기내로 들어가자 항공기 의자, 기내 바닥 카펫, 화장실, 내부마감재가 뜯겨 있었다. 약 20명의 정비사들은 외관을 검사하고 상태를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송원석 테크센터 항공기중정비공장 1팀장은 “항공기들이 오장육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은 특별한 결함이 발견돼서가 아니다”라며 “1년 반에서 2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항공기 집중 점검(중정비)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테크센터에서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소속 군용기도 정비를 한다. 탄소복합소재를 이용한 항공부품도 생산한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 사건 발생 무렵 작전에 투입됐다가 해상에 불시착한 링스헬기도 최근 이곳에서 수리를 마치고 현장에 재배치됐다.

○ D체크 받으면 사실상 새 비행기

꼬리날개 ‘절개’ 부산 강서구 대저2동 대한항공 테크센터 내 격납고에 세워진 에어버스 330의 수직 꼬리날개가 점검을 받기 위해 분리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꼬리날개 ‘절개’ 부산 강서구 대저2동 대한항공 테크센터 내 격납고에 세워진 에어버스 330의 수직 꼬리날개가 점검을 받기 위해 분리되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항공기 정비는 작업 수준과 강도에 따라 A∼D체크로 나뉜다. A체크가 항공기의 각종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점검하는 수준이라면 중정비로 불리는 C체크부터는 정비의 차원이 달라진다. 오랜 운항으로 피로가 누적된 부분이 생겼을 가능성까지 체크하는 것이다. 깨지거나 손상된 부품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좌석부터 엔진까지 항공기 내·외부를 뜯어 살핀다. 항공기 출입문 쪽에 있는 비상 탈출 슬라이드는 한 차례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상태를 점검한다.

D체크는 6년에 한 번꼴로 이뤄진다. ‘D체크를 받으면 새 비행기가 된다’고 말할 정도다. 송 팀장은 “엔진은 중요한 부분인 만큼 가장 꼼꼼하게 진단한다”고 전했다.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이나 에어버스는 비행기를 만들 당시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면 대한항공에 수시로 ‘특정 부품 상태나 오작동 유무를 확인하라’고 통보한다. 이때는 A∼D체크와 관계없이 신속히 정비한다.

최근 외국계 저비용항공사(LCC)의 정비 부실 문제가 부각되면서 안전 운항을 책임지는 테크센터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인천∼세부 노선을 운항하던 필리핀 제스트항공은 항공기 유압시스템 결함과 연료 연결장치 뚜껑 유실 문제 때문에 필리핀 민간항공국(CAAP)으로부터 운항정지 처분을 받았다.

국내 LCC들도 중정비를 외국에서 받아야 하는 점은 문제다. 현재 제주항공은 중국, 티웨이항공은 대만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각각 중정비를 받는다. 지난해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국정감사에서도 LCC 정비공장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진전이 거의 없는 상태다. 국내 LCC 1위인 제주항공이 7월 350억 원을 투자해 자체 격납고를 짓기로 한 게 전부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해외 정비에 의존할 경우 긴급 상황에서 적시 정비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LCC로 옷 갈아입는 항공기 늘어

비행기 ‘속살’ 점검 대한항공 테크센터 정비사들이 3일 에어버스 330 기내에서 정비를 하고 있다. 정밀한 정비를 위해 기내에 있는 의자, 화장실, 갤리(기내 주방) 등은 모두 떼어냈다. 대한항공 제공
비행기 ‘속살’ 점검 대한항공 테크센터 정비사들이 3일 에어버스 330 기내에서 정비를 하고 있다. 정밀한 정비를 위해 기내에 있는 의자, 화장실, 갤리(기내 주방) 등은 모두 떼어냈다. 대한항공 제공
세계 각국에서 LCC가 잇달아 출범하면서 대형 항공사 소속 항공기가 LCC로 옷을 갈아입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대한항공 테크센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기 페인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공군 1호기뿐 아니라 세계 23개 항공사 소속 항공기 등 323대의 페인팅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날 가로 75m, 세로 86m, 높이 25m 규모의 도장 격납고(페인트 행거)에서는 대한항공 보잉 737-800기가 진에어 11호기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올해 들어서만 대한항공 소속 비행기 2대가 진에어기가 됐다.

페인트 행거 안으로 들어가자 페인트 분진이 외부로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디퓨저’ 170대가 쉼 없이 돌아갔다. 중앙컴퓨터가 공기를 정화해 격납고 안으로 들여보내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가 페인팅 작업에 적합하도록 조절된다. 강만수 테크센터 항공기도장그룹장은 “작업 도중 생긴 페인트 가루나 먼지는 모두 지하로 빨려 들어가도록 바닥에 진공층이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작업 중인 항공기는 전면이 옅은 연둣빛을 띠었다. 강 그룹장은 “기존 페인트를 벗겨낸 뒤 기체 부식을 방지하고 새 페인트가 잘 달라붙게 도와주는 프라이머(primer·전 처리 도장용 도료)를 입혀 그렇다”고 설명했다.

항공기 페인팅은 차량 페인팅과 달리 기존 페인트를 모두 제거한다. 무게가 곧 비용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겉면에 벤젠알코올 등이 포함된 ‘리무버’ 3784L를 뿌린다. 2시간 정도가 지나면 기존 페인트는 화학반응을 일으켜 녹아내린다. 이때 작업자 수십 명이 일사불란하게 항공기 겉면에 붙은 페인트를 플라스틱 주걱으로 긁어내면 알루미늄 소재의 항공기 외관이 드러난다. 프라이머 작업도 이때부터 할 수 있다.

덩치가 큰 보잉 B747-400 전체를 칠하는 데는 189L짜리 페인트 5통(총 4000만 원가량)이 필요하다. 리무버, 프라이머, 페인트, 각종 자재를 포함하면 총 비용은 1억 원가량이다.

72시간이 지나 페인트가 모두 마르면 항공기 무게는 380kg 정도 늘어난다. 이 무게 때문에 추가로 들어가는 유류 비용은 연간 7000만 원 내외다. 페인트 비용과 무게 증가에 따른 연료비를 아끼려고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누드 항공기’를 운영하는 외국 항공사도 있다.

부산=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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