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C 든든한 맏형 이호준 에러 많던 어린선수들 이젠 호수비 척척 4월11일 첫승 계기 우리 모두 달라졌죠 개인목표 초과…20홈런 90타점 재조정 계약기간 4년내 KS 우승하고 은퇴할 것 구단 배려로 아들 시구…최고 아빠 됐죠
포털사이트에서 이호준(37·NC)의 이름을 검색하면,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뜬다. 남부럽지 않은 선수생활을 하면서 두 차례의 프리에이전트(FA) 계약에 성공했고, 아름다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아이가 든든히 힘을 불어넣는다. 이 정도면 이호준의 인생은 ‘대박’, 그 이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야구선수’와 ‘가장’ 외의 또 다른 역할에도 ‘이호준처럼’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주장’이다.
1군에 첫 발을 들여놓은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캡틴. 이것이 그에게 맡겨진 세 번째 역할이었다. 전 소속팀 SK에서도 주장은 해봤다. 그러나 올해 받은 완장의 무게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무거웠다. 실수를 연발하며 좌충우돌하는, 모든 게 처음인 팀과 후배들. 그 안에서 그가 해야 할 역할이 산더미였다.
처음에는 홀로 질주하는 100m 달리기였다. 그 다음에는 어깨동무를 하고 동료를 이끄는 ‘2인3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 함께 힘을 이어받으며 한 시즌을 나는 장거리 계주가 완성됐다. 주장의 임무가 줄어들수록, 팀은 단단해졌다. 이호준의 책임감과 후배들의 열정이 서서히 조화를 이루고 꽃을 피우고 있다.
마흔이 가까워오는 베테랑은 이제 “야구장 나오는 게 정말 설렌다”며 활짝 웃는다. 그래서 스포츠동아가 이호준을 만났다. NC의 리더이자 백전노장, 그리고 한 가족의 일원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에도 끊임없이 팀 얘기로 돌아갔다. 결국은 ‘NC의 이호준’과 나눈 인터뷰였다.
● NC의 리더 이호준
-이제 NC의 첫 시즌이 끝나간다. 올해를 돌아본다면.
“아쉬운 점도 있었고, 좋은 부분도 있었다. 다행히 아쉬웠던 부분이 점점 좋은 부분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내년이 밝아 보인다.”
-시즌 초반과 지금,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
“초반에는 다들 부담감도 있었고, 역시 신생팀이라 어린 선수들의 플레이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평범한 땅볼인데 갑자기 에러가 되면서 경기가 뒤집힌다든지 하는 것들. 일년에 한두 개 나올 실수들이 4월에 무더기로 나와서 당황했다. 지금은 나이스 플레이들이 많이 나온다. 또 다들 자기 포지션에서 자리 잡으려고 열심히 하는 모습들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나도 힘이 나고 많이 배운다. ‘어렸을 때 나도 저랬지’ 하고 떠올리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팀이 달라졌다고 느낀 계기가 있었나.
“아무래도 첫 승(4월 11일 잠실 LG전) 때인 것 같다. 시즌 두 번째 경기(4월 3일 마산 롯데전)에서 9회말 끝내기 기회를 잡았다가 주자가 홈에서 아웃돼 진 적이 있다. 그게 개막 7연패까지 이어졌다. 그 기간 동안 자신감이 많이 떨어지고 겁이 났다. 1승을 언제 할지 조마조마해 하다가 어이없는 플레이도 많이 나왔다. 그 후에 9연패도 했지만 그 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그때가 선수들이 반성하는 계기였던 것 같다.”
-팀에서 ‘제2의 이호준’이 될 듯한 후배가 보이나.
“에이, 이호준 말고 더 앞을 봐야지. 이승엽(삼성)이라든지.(웃음) 사실 난 후배들이 메이저리그처럼 더 큰 목표를 세워놓고 야구했으면 좋겠다. 류현진(LA 다저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부분이다. 20년이 지나보니 ‘좀더 어렸을 때 정신 차리고 야구했다면 나에게도 한번쯤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라. 후배들은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지만 말고, 지금부터 자기관리를 잘해서 더 높은 곳을 봤으면 좋겠다.”
● 베테랑 야구선수 이호준
-그렇다면 올해 스스로의 성적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할 만큼 한 것 같다. 시즌 전 생각했던 수준에 근접했다. 홈런 15개에 80타점을 목표로 했는데, 홈런은 벌써 넘었고 타점도 다 했다. 그래서 일단 홈런 20개에 90타점으로 상향조정했다.”
-‘NC의 이호준’이 이전의 자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활기차졌다. 더 즐겁다. 야구가 한참 잘 되던 2003년, 2004년의 기분이다. 야구장에 일찍 나가고 싶고, 빨리 게임도 하고 싶다. 타석에서도 자신감이 생긴다. 무엇이든 해도 될 것 같은 긍정적 기분이 넘친다. 내가 NC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고 싶은 의욕도 생겼다. 어떻게 보면 신인 같은 마음으로 돌아온 거다.”
-그런 마음이 바로 ‘회춘했다’는 평가까지 받는 비결인가.
“정작 난 비결을 몰랐다. 그런데 김경문 감독님이 ‘넌 창원하고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고 하시더라. 내 생각으로는 감독님과 코치님들, 프런트까지 전부 다 궁합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지도자와 잘 안 맞으면 선수가 뭔가 보여주지 못하고 엇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감독님이 늘 강조하시는 부분이 내 마음과 일치한다. 몸과 마음이 편하니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그게 성적으로 연결된다.”
-우승도 경험했고, FA 계약도 두 번 했다. 이제 남은 꿈은 뭔가.
“딱 두 개다. NC에서 현역 선수로서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하는 것, 그리고 이 팀에서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은퇴하는 것.”
-은퇴까지는 얼마나 남은 것 같나.
“지금 마음 같아서는 남은 계약기간 3년 안에 우승을 하고, 그 해에 바로 은퇴하고 싶다. 그렇지만 그때 가면 또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웃음) 그동안 우승하고도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여기서 우승하면 눈물 콧물 다 짤 것 같다. 그만큼 하고 싶다.”
● 아들, 그리고 아버지 이호준
-아버지께서는 올해 아들을 보고 어떤 말씀을 하시나.
“지난해에 ‘데뷔 이후 가장 야구를 잘한다’고 칭찬하셨는데, 올해는 더 깜짝 놀라신다. ‘이러다가 FA 한 번 더 하는 거 아니냐’면서.(웃음) 대신 나이가 있으니 부상을 걱정하신다. 시즌 전에 녹용을 지어주셔서 먹고 시작했다. 전화도 자주 하시긴 하는데, 이젠 1안타 친 날은 넘어가고 2안타도 결정적인 걸 쳤을 때나 하신다. 3안타나 홈런 정도는 쳐야 ‘축하한다, 감 좋다, 계속 이어가라’는 전화가 온다.(웃음) 그래도 ‘몸 어떠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하신다.”
-세 자녀도 다들 NC팬이 됐겠다.
“당연하다. 애들뿐만 아니라 같은 반 아이들도 다 NC팬이다. 사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이던 작년에 야구를 시작했다가 3개월 하고 힘들다고 그만뒀다. 힘든 걸 알아서 그런지, 야구를 그만두고 나서 아빠를 굉장히 존경한다.(웃음) 사실 아들이 야구에 재능이 좀 많아 보였다. 마음 같아선 다시 시키고 싶지만, 열 번 넘게 꼬셔봐도 잘 안 넘어온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다시 기회를 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들의 시구(8월 25일 마산 SK전)는 좋은 경험이 됐을 것 같다.
“그렇다. 스스로도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하더라. 뿌듯했고, 구단에 고맙게 생각한다. 인천에 있는 식구들과 떨어져 살아서 늘 미안했는데 한 방에 만회했다. 친구들에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꼭 TV 보라고 잔뜩 자랑했다고 한다. 내가 포수했는데, 원바운드로 들어왔다. 다음에 한 번 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