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미]단언컨대 웃자고 하는 말이겠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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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말끝마다가 아닌 말머리마다 붙는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확신과 자신감을 드러낸다. 겸손은 미덕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듣는 순간 모호함이 사라지고 통쾌함을 느낀다. 말의 진위는 따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아님 말고”.

올해 최대 유행어인 ‘단언컨대’ 이야기다.

“단언컨대 메탈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는 한 휴대전화 광고 문구로 시작돼 “단언컨대 뚜껑은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는 라면 광고로 퍼져 나간 이 말은 지금도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진화 중이다. 유행어의 최전선인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언컨대 냉면은 가장 완벽한 음식이다”라고 했더니 다른 방송에서 “단언컨대 자장면은 가장 완벽한 음식이다”라고 맞받아친다. 인터넷에는 ‘단언컨대 끝판왕’이라고 주장하는 패러디들이 차고 넘친다. 단언컨대의 원조는 헬렌 켈러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중복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의 증거가 된 헬렌 켈러는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단언해서 말하건대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라고 했고, 이 말을 ‘단언컨대’로 줄여 광고에 사용한 뒤 국민 유행어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사실 주저하지 않고 딱 잘라 말한다는 뜻의 단언(斷言)은 웬만한 확신 없이는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며 기사를 쓸 때도 ‘∼라고 말했다’거나 ‘주장했다’가 일반적이며 ‘단언하다’라는 표현은 말한 이의 의지와 책임을 각별히 표현할 때만 쓸 수 있다. 이처럼 진지한 말이 어떻게 웃자고 하는 말이 돼 버렸을까. 한국 철학계의 거두이자 수필가로 유명한 김태길 선생(2009년 작고)이 쓴 ‘단언에 관하여’라는 수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확고부동하게 단정을 내리기를 좋아하고, 또 그렇게 하는 사람을 환영한다. 행동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에 있어서도 우유부단한 것은 비위에 거슬린다. 그러면 그렇고 아니면 아니라고 딱 부러지게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

단언컨대는 처음부터 화통한 한국인의 기질에 딱 맞는 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유행어에는 반전이 있다. 일단 내가 옳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정작 진위를 밝힐 대상이 없다. 단언컨대 완벽한 음식이 냉면인지 자장면인지 누구도 따지지 않고 따질 생각도 없다. 진지함이 가벼움으로 대치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 말놀이의 재미는 의도적인 논리의 무시에 있다.

“철저한 모략극이고 날조”(8월 29일), “저는 뼛속까지 평화주의자”(8월 30일), “몇몇 단어를 짜깁기해 무력투쟁이나 북 용어가 많은 것처럼 교묘하게 조작”(9월 2일). 내란음모와 선동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해명을 듣다 보니 ‘단언컨대 말놀이’가 떠오른다. 지금까지 공개된 녹취록만 보더라도 이 의원을 비롯한 추종자들의 반국가적 행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라고 생각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 “뼛속까지 평화주의자”라 큰소리치며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심한 모순을 느끼게 된다. ‘뼛속까지’는 그렇게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뼛속까지’ 대신 ‘단언컨대’를 넣고 싶다. 그럼 모든 게 웃자고 한 말이 되지 않을까.

김태길 선생은 같은 수필에서 ‘단언’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런 경고도 했다. ‘인류의 사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까지도 속여야 한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 큰소리를 땅땅 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도 자기가 무식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지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무식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 된다. 자기가 무식하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무식한 것은 크게 복된 일이다.’

세상은 다 아는데 자신들이 한 일을 자신들만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자신까지도 속인 까닭이다.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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