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靑 겨냥 ‘인사-감사 마찰’ 불만 토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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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임 양건 감사원장 ‘외풍’ 언급 파장

양건 감사원장이 26일 이임사를 통해 재임 기간 중 감사원 업무에 대한 ‘외압’이 있었음을 강하게 내비쳤다.

양 원장은 외풍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임사 곳곳에서 자신이 자진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임식 전 감사원 간부들과 15분간 가진 티타임에선 “감사원의 독립성은 제도상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이지만 직무는 독립성을 띤다는 자체가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최근 감사원에서 있었던 일을 돌아보면 이슈는 감사위원 임명 제청 건밖에 없었다. 그 일로 좀 이견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양 원장은 아마도 인사 쪽에서 상당히 좀 독립성을 갖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원장은 감사위원으로 거론된 장훈 중앙대 교수가 너무 깊숙이 (정치) 활동을 한 게 아니냐고 봤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외압은 인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감사원 내부의 법적 실무 검토에서는 장 교수가 감사원이 정한 규정을 적용했을 때 결격사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장 교수는 전날 밤 김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위원 생각이 없다. 신경 쓰지 마라”며 감사위원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양 원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진영곤 감사위원과 김인철 전 감사위원을 제청했다는 점에서 양 원장의 자기모순을 지적했다.

여권 관계자는 “양 원장이 4대강 감사와 원전 비리 감사 부실 등으로 정치권에서 사퇴 압력이 오자 인사 갈등을 구실 삼아 부적절한 출구전략을 사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새누리당 내 친이계에서 대정부질문에 양 원장을 부르고,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사퇴시켜 버리겠다고 벼르고 있었다”며 “외풍은 정치권의 사퇴 압박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도 “외압이라 하면 꼭 청와대가 아니다. 4대강 감사를 할 때마다 정치권의 압박에 양 원장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감사원에 4대강 감사 요구를 할 때만 해도 공사 관련 담합에 국한됐던 감사 목적이 대운하 의혹으로 확대되면서 4대강 감사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청와대 및 이를 충실하게 따른 감사원 간부들과 양 원장이 갈등을 겪었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4대강 감사를 진행했던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4대강이 대운하 사업과 다를 바 없다는 증거는 이미 2월경에 나와 방향이 잡혔다. 양 원장이 이를 덮으라고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양 원장의 이임식 직후 이정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나서 “자신의 결단으로 스스로 사퇴해 유감”이라며 청와대 외압설을 일축했지만 곤혹스러운 기색도 역력하다.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의 댓글 등 개입 의혹이 국정조사를 끝으로 마무리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독립기관의 중립성이 훼손되는 사태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선 양 원장이 감사원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물러나는 것처럼 지나치게 스스로를 포장했다는 비판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기류가 많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아름다운 퇴장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천막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퇴 의혹 자체가 헌법 위반이자 헌법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정기국회 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 감사원장, 감사위원 인사 논란의 재발을 막고 ‘표적 감사’ 등 불공정 논란을 척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감사위원 임명 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하고 감사원이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규정을 삭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헌법 정신에 맞는 감사원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조수진·윤완준 기자 jin0619@donga.com
#양건#감사원장#외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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