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칼럼]혁신코드 가득한 ‘꽃보다 할배’… 실험정신 돋보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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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할배.’ 배우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평균 연령 76세인 ‘할배’ 연예인들이 배낭여행길에 오르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사실 ‘여행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만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5일 첫 방송부터 평균 4.15%라는 높은 시청률(AGB닐슨미디어리서치 집계, 전국 케이블가입가구 기준)을 기록하며 주목을 끌었다. 케이블TV(tvN) 프로그램치고 매우 높은 수치였을 뿐 아니라 동시간대 지상파 방송의 경쟁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에도 뒤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가 4회째 방송에서 시청률 5%대를 돌파하다 6회 방송 때에는 평균 6.65%, 분당 최고 시청률 9.66%를 기록했다.

꽃보다 할배의 성공 원인은 무엇일까. 인간적 얼굴을 가진 혁신에 대해 다룬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의 저자 톰 켈리의 주장에 빗대어 본다면, 꽃보다 할배는 혁신의 10가지 양상 중 ‘타화수분자(他花受粉者·cross-pollinator)’이자 ‘이야기꾼(storyteller)’이며 ‘실험자(experimenter)’의 면모를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우선 타화수분(서로 다른 그루나, 다른 꽃 사이의 암술과 수술 사이에서 수분이 되는 현상)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디어와 콘셉트를 함께 엮어 새롭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혁신을 일궈내기 위해선 이종교배가 매우 중요하다.

꽃보다 할배도 타화수분의 공식을 따라 기존 예능의 식상함을 깨뜨렸다. 첫째, 고리타분할 것 같은 노년층을 아이돌 스타들이 판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였다. 둘째, 편안하게 효도관광을 받아도 모자랄 이들에게 팔팔한 20대도 고생스러운 배낭여행을 떠나도록 했다. 셋째,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꽃미남 ‘F4’, ‘신사의 품격’의 미중년 4인방의 계보를 잇는 꽃할배 ‘H4’를 탄생시켰다. 근엄한 왕이나 장군 역할을 주로 맡아 온 40대 배우 이서진을 ‘길이나 찾고 표나 끊고 식당이나 수소문하는 짐꾼’으로 전락(?)시켜 버린 건 보너스다. 이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들을 한데 엮어 놓은 결과, 꽃보다 할배는 제작진이 표방한 ‘세상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예능’이라는 차별화된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예능에선 보기 드물게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도 돋보인다. 꽃보다 할배의 제작진은 가식적인 서비스가 판치고 가짜가 넘쳐나는 요즘, 아무리 예능이라도 진정성이 없으면 소비자들을 ‘낚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 때문에 캐스팅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40년 이상 연기자의 길을 함께 걸으며 우정을 쌓아 온 끈끈한 선후배이자 막역한 동료 사이인 배우들을 한데 모은 것. 출연자들끼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안면을 트게 하는 여타 프로그램과는 출발부터가 달랐다.

그 덕택에 할배 연예인들은 1회 방송부터 ‘직진 순재’ ‘미소천사 구야형’ ‘로맨틱 근형’ ‘심통 일섭’ 등 실제 자신들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그들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복불복’ 게임 같은 작위적 미션이나 자학성 개그도 없앴다. 그 대신 배낭여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출연진 스스로 제한된 예산 안에서 자유롭게 여행계획을 짜면서 스스로 추억을 쌓아가도록 했다. 제작진은 한발 뒤로 빠져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 “죽어가면서도 이런 모양이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는 노배우들의 대화를 조용히 카메라에 담아냈다. “나는 요지경에서 끝나지만 젊은이들은 지금 이 시대에 인정을 못 받더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걸 시도해 보면 훗날 명예로운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배우 신구의 조언 등을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꽃보다 할배가 만약 지상파에서 방영됐다면 시청률이 더 높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만약 지상파였다면 아예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좌절됐을 공산이 크다. 심지어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 측면에서 지상파보다 훨씬 너그러운 케이블TV에서조차 “출연진의 연령이 너무 높아 타깃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할아버지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누가 보겠느냐”는 선입견을 뒤로한 채 과감한 시도를 했다. 모든 혁신의 뒤에는 아무리 리스크가 높다 하더라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는 실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통하지 않는 방법 1만 가지를 발견했을 뿐이다”라는 토머스 에디슨의 명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34호(2013년 8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가리봉동 마리오아울렛의 성공 비결

▼ DBR Case Study


가리봉동은 인근 구로공단과 함께 서울 서남부의 대표적인 공장지대였지만 어느새 한국 최대의 패션 아웃렛 밀집지역으로 변모했다. 주말이면 서울뿐 아니라 인천 수원 천안 등지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 쇼핑객들로 거리가 가득 찬다. 이런 변화를 선도한 것은 2001년 문을 연 마리오아울렛이다. TV, 신문 광고 없이도 입소문을 통해 알뜰 손님이 몰려들어 건물을 3관까지 늘렸다. 이 업체는 자금력이 좋은 대형 백화점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변두리 지역에 매장을 내고 유명 브랜드라도 시즌이 지난 옷만 팔았다. 이름값 높은 해외 명품 브랜드들보다는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국내 브랜드 위주로 매장을 배치한 것도 실속파 소비자들을 끄는 데 주효했다. 가리봉동을 쇼핑의 허브로 만든 마리오아울렛의 경영 비결을 소개했다.


기업경영서 역사의식이 중요한 까닭

▼ Harvard Business Review


2010년 미국의 식품업체 크래프트푸드가 영국의 제과업체 캐드베리를 인수하기로 결정하자 캐드베리의 경영진과 직원들은 강력하게 저항했다. 두 기업의 문화가 충돌해 조직 통합에 실패할 것이라고 언론들은 예측했다. 하지만 크래프트의 기록 보관 담당자들은 두 회사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공통된 가치관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두 회사의 창업자들은 모두 신앙심이 투철한 사람이었으며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두 회사의 제품들이 식료품 매장에서 나란히 팔린 적도 많았다. 여러 가지 역사적 공통점을 바탕으로 직원들을 안심시키고 설득하자 조직 통합이 원활히 이루어졌다. 이처럼 경영자는 역사를 상기시켜 직원들을 통합하고 격려할 수 있다. 훌륭한 리더는 기업의 역사를 뒤져 사람들을 독려하기 위한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찾아낼 수 있다. 기업 경영에서 역사의식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구독 문의 02-2020-0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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