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전세 동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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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 받아놓고 쟁탈전… 물건 나오면 반나절만에 거래끝
■ 비수기속 이상과열 전세시장 가보니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인근 중개업소에 월세 매물을 알리는 시세표만 잔뜩 붙어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인근 중개업소에 월세 매물을 알리는 시세표만 잔뜩 붙어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옥수동 ‘옥수 레미안리버젠’(1821채) 아파트 앞 B 부동산중개업소. 한 30대 여성이 중개업소로 들어서 “전세를 구한다”라고 하자 중개업소 사장은 “요즘 전세가 어디 있느냐”며 시큰둥한 반응부터 보였다. 이 여성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월세를 찾자 주변 중개업소 몇 곳에 전화를 걸어 보던 중개업소 사장은 금세 전화를 끊었다. 》

“보증금 1억 원에 월 250만 원인 109m²짜리가 하나 있었는데 어제 오후 8시 반에 계약이 됐답니다. 아주 그냥 초스피드로 나가네요.”

이 사장은 “전세는 씨가 말랐고, 월세도 나오는 즉시 계약”이라며 “지금 중개업소마다 대기자가 20∼30명은 된다”라고 말했다.

전세금 폭등으로 서민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는 가운데 본보 취재팀은 9, 10일 서울지역에서 전세금이 많이 오른 성동구 옥수동과 금호동, 송파구 잠실동, 관악구 봉천동 등지의 부동산중개업소를 돌았다. 시장은 전세를 구하려는 세입자끼리 ‘쟁탈전’이 벌어질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중개업소에서 매물이 나왔다는 연락이 와서 집을 구경하는 사이 다른 중개업소에서 소개받은 세입자가 계약을 해버리는 일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송파구 잠실동의 5678채 규모 대단지 아파트인 ‘엘스’ 앞의 중개업소 20여 곳에도 전세를 찾는 이들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졌지만 대부분 허탕을 쳤다. “전세 좀 알아보려고 왔는데요”라는 고객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개업소 사장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마 이 아파트에서 보증금을 낀 월세 매물이 나오긴 하지만 직장인들에겐 큰 부담이다. 82m² 아파트의 월세가 보증금 4억 원에 월 50만 원 수준. 보증금이 3억 원으로 내려가면 월 70만 원으로 뛴다.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월세 보증금이 과거로 치면 거의 전세금 수준”이라며 “전세가 워낙 귀하다 보니 이런 월세 계약도 많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전셋집이 품귀 현상을 보이면서 전세금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전월 대비 전국 평균 전세금 상승률은 올 5월 0.19%, 6월 0.23%, 7월 0.37% 등으로 계속 뜀박질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파크푸르지오 아파트(전용 84m²) 전세금은 지난해 8월 2억9000만 원에서 현재 4억 원으로 1년 새 1억 원 넘게(38%) 올랐다.

전세금 상승으로 7월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은 57.3%로 6월보다 0.6%포인트 높아졌다. 서울 강남지역은 전세금이 매매가의 80%에 육박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경기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과 광주 광산구 월계동에서는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전세금이 매매가를 추월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전세금 상승 부담을 이기지 못해 서울에서 밀려나는 가구도 늘고 있다. 2011년 6월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2억1000만 원짜리 아파트(82m²) 전세를 구해 신혼집을 마련했던 김모 씨(34·회사원)는 최근 집주인한테서 9000만 원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받은 뒤 고심하다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에 2억 원을 주고 전세를 얻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수요자들은 주택을 보유하는 것보다 세를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6억∼7억 원 현금을 쥐고도 전세시장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전세금이 오르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이를 보전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이 증가한 것도 전세금 급등의 요인이다.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맡겨 봐야 연 2.6% 정도밖에 안 되지만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 수익률이 적어도 연 6%는 되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주택임대 시장의 축이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불안’이 최근 전세난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주택임대 시장에서 전세 비중은 1980년 60.7%에서 2010년 50.3%로 10.4%포인트 감소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세는 세계적으로 우리만 유일하게 갖고 있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라며 “전세시장의 축소 및 소멸은 자연스러운 흐름인 만큼 전세 제도 유지에 매달리기보다 월세 소득공제와 같이 월세 세입자의 부담을 더는 정책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훈·장윤정 기자 jefflee@donga.com   
정윤아 인턴기자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4학년
#부동산#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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