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지원금 달랑 100만원… 풍수해보험, 그런게 있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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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강원 막막한 수해복구 현장

본보 취재팀이 1일 경기 여주군 흥천면 하다리를 찾았을 때 박성숙 씨(76)는 폭우가 휩쓸고 간 집에서 시멘트 바닥 위에 스티로폼과 돗자리를 깐 채 생활하고 있었다. 박 씨는 “흙탕물은 다 빼냈지만 벽지는 썩고 집도 수리해야 하는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여주=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본보 취재팀이 1일 경기 여주군 흥천면 하다리를 찾았을 때 박성숙 씨(76)는 폭우가 휩쓸고 간 집에서 시멘트 바닥 위에 스티로폼과 돗자리를 깐 채 생활하고 있었다. 박 씨는 “흙탕물은 다 빼냈지만 벽지는 썩고 집도 수리해야 하는데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여주=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 유사1리에 사는 한광석 씨(60·여)는 지난달 22일과 23일 이틀간 퍼부은 폭우(311mm) 탓에 집이 물에 잠겼다. 비닐하우스는 4분의 3 정도가 뜯겨나갔다. 탈곡기와 고추건조기도 고장이 났다.

그 후 한 씨는 장판 교체와 도배는 업체를 수소문해 간신히 끝냈지만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전기계량기를 고치기 위해 한국전력 전화번호를 수소문하고 “집에 와 달라”고 수리를 거듭 요청하는 등 연락하는 데 진땀을 뺐던 터라 남은 일들이 아찔하다. 읍사무소 직원은 “자연재해 피해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전화 한 통을 한 뒤 감감 무소식이다.

지난달 22, 23일 쏟아진 폭우로 경기 지역에서 4명이 사망하고 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이틀간 내린 폭우로 전국에서 760여 가구에 침수가옥이 발생한 가운데 경기 지역에 700여 가구(강원지역은 10여 가구)가 몰리는 등 피해가 컸다.

약 열흘이 지난 1일과 2일 본보 취재팀은 비 피해가 집중됐던 경기 광주, 여주와 강원 춘천 지역의 수해 복구현장을 찾았다. 대부분의 이재민들은 꼭 필요한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복구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구 지원 시스템 곳곳에 허점이 노출돼 제도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 ‘원 스톱 복구행정’ 절실

취재팀이 경기 강원 지역에서 만난 이재민은 대부분이 농촌에 거주하는 고령자였다. 수해를 당한 지 열흘이 넘었지만 이들은 어디서부터 복구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당황하고 있었다.

여주군 흥천면 하다리에서 사는 박성숙 씨(76·여)는 폭우 때 집안 전체에 무릎 높이만큼 빗물과 토사가 찼다. 박 씨는 장판을 걷어낸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폼과 돗자리를 깔고 지내고 있다. 박 씨는 “아들이 이웃집을 돌아다니며 공사업체를 수소문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이재민들마다 한결같이 이런 어려움들을 호소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기공사, 농기계 수리, 도배장판, 집·비닐하우스 수리, 가전제품이나 가구수리 및 구입 등으로 비슷했다. 하다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우리가 연락할 수 있는 업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리해 알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농기계나 집수리 정도는 읍사무소나 면사무소에서 일괄적으로 수리를 주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매일 각자 전화 돌리느라 바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이재민 “풍수해 보험? 있는 줄도 몰랐다”

수해 복구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가 2006년부터 정책보험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풍수해 보험’은 정작 이번에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풍수해 보험은 생계 수준에 따라 보험료의 55∼86%를 국비로 지원해준다. 나머지 보험료 중 다시 지자체가 일부를 부담하기 때문에 개인의 부담이 적다. 자연재해 탓에 가옥이나 비닐하우스가 부서지면 복구비용의 70∼90%까지 보전받을 수 있다.

하지만 취재팀이 만난 이재민들은 풍수해 보험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광주 곤지암읍에 사는 이연수 씨(유사1리 이장)는 “무엇인지 잘 모르고 주변에서도 가입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기 이천시 백사면의 한창운 씨(송말1리 이장)도 “면사무소나 읍사무소 직원에게 그런 보험이 있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험을 운영하는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은 지자체에 홍보업무를 넘겼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보험지원 예산도 부족하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7월 마지막 주 기준으로 31만 건이 가입됐고 2일부터는 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올해 정부지원 몫인 125억 원이 모두 소진됐기 때문이다.

○ 피해 규모 관계없이 무조건 지원금 ‘100만 원’


춘천시 신동면에서 침수피해를 본 강금예 씨(78·여)는 집 수리업체에 견적을 문의했더니 약 1500만 원이 나왔다. 이번에 강 씨가 정부에서 받는 재난지원금은 총 100만 원. 냉장고 한 대를 살 수 있을 정도다.

수해복구를 돕기 위해 정부가 이재민에게 지원하는 재난지원금 중 가옥이 침수된 경우 받을 수 있는 금액은 일괄적으로 100만 원이다. 문제는 침수가옥마다 장판과 벽지가 젖은 정도에서부터 집터 일부가 파손된 정도까지 피해규모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가 지원금 책정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광주 곤지암읍 유사1리에 사는 오하영 씨는 “수리비용으로 약 1000만 원 견적이 나왔지만 지원금은 100만 원이 나온다고 들었다”며 허탈해했다. 안행부 관계자는 “재난지원금은 복구비용을 전액 보상해 주는 차원이 아니라 재활 차원에서 조금씩 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 상황에 따라 기준을 정해 지원금을 차등지급해야 형평성에 맞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침수주택은 벽에 균열이 가고 지반 약화로 붕괴까지 우려되는 상태였지만 이에 대한 지자체의 점검이나 안전대비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 수리업자는 “시골은 기본적으로 지반이 약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침수가옥도 지반이 쓸려 내려가면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다”고 말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침수 가옥에 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지만 아직 어떠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여주·광주·춘천=이은택·남경현·이인모 기자 nabi@donga.com   
박형윤 인턴기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침수지원금#풍수해보험#수해복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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