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대전선병원 선승훈 원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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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기업 임원들이 우리 병원에 단체로 온다”

대전선병원을 의료한류의 메카로 키우고 있는 선승훈 의료원장.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병을 고치러 온 환자들이 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게 환자 최우선주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대전선병원을 의료한류의 메카로 키우고 있는 선승훈 의료원장.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병을 고치러 온 환자들이 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게 환자 최우선주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의료관광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본보는 지난달 22일부터 3회에 걸친 연재물을 통해 의료수출산업의 현주소와 차별화 전략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좋은 일자리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의료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화두로 제시된 요즘, 지방병원으로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받는 곳으로 대전선병원이 있다. 병원을 이끌고 있는 선승훈 의료원장(54)을 만나고 싶었던 것은 ‘의료한류’에 대한 구체적인 성공전략을 듣고 싶어서였다.

○ 지난해 외국인 환자만 2100여 명

대전선병원은 2008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500병상 이상을 갖춘 86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평가에서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8곳의 쟁쟁한 대형병원과 함께 당당히 A를 받았다. 당시 조사는 치료를 받고 돌아간 환자들을 상대로 조사원들이 일일이 전화를 한 것이어서 의미가 큰 평가였다. 이 밖에도 암수술 잘하는 1등급 병원, 응급의료기관 최우수 1등급 병원으로 꼽혔다.

요즘 이 병원을 주목받도록 하는 것은 지난해 8월 문을 연 국제검진센터다. 개원 8개월 만인 올 4월 1200개 평가 항목을 모두 통과해 건강검진센터로는 세계 처음으로 국제의료기관 평가인증(JCI)을 받았다. 또 지방병원 중 유일하게 해외환자 유치부문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초기에는 중국 몽골 베트남 환자들이 많았지만 올 들어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왔다.

대전선병원 경쟁력이 입소문으로 알려지자 지난해에는 서울대병원, 삼성의료원이 두 차례나 병원을 방문했고 해외에서도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태국 인도 몽골 등 20개국 병원과 기관이 병원 경영을 배우러 왔다. 병원 측은 업무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자 아예 방문가능한 날을 한 달 1회 마지막 금요일로, 방문자 수도 1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요즘 지방에서는 환자들을 서울로 빼앗겨 전전긍긍인데 대학병원도 아닌 개인지방병원이 의료한류의 롤 모델이 된 비결은 뭘까. 지난달 22일 병원에서 만난 선 원장은 격세지감이 느껴진다는 표정으로 “5년 전만 해도 ‘대전을 한국의 ‘메디컬 투어’ 중심으로 키우겠다’고 하면 ‘외국인 자체가 별로 오지 않는 도시에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지난해 20여 개국에서 2514명의 환자가 찾아왔는데 올해는 4000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환자들을 본격 유치한 게 3년 전인데 중국 VIP들까지 찾아올 줄은 예상 못했다.”

기자가 이날 둘러본 국제검진센터는 병원이라기보다 호텔에 가까울 정도로 편안하고 친근감을 갖도록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검진센터에서 1박 2일씩 묵는 외국인들이 많다고 들었다.

“중국 기업들이 자사 임원 VIP들을 단체로 부부동반 여행을 보내주고 있다. 이들은 오후 5시경 병원 특실에 짐을 푼다. 특실은 호텔과 똑같은 구조다. 아침 일찍 공복에 전신 검진을 받은 후, 부인들은 피부관리까지 받고 오후 2시쯤 퇴원한다. 외국인들은 여행기간이 3, 4일로 짧기 때문에 검진 결과도 최대한 여행 기간 안에 알려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잡한 검사는 환자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전화로 상세히 설명해준다.”

○ 우리는 ‘헝그리 복서’


그는 “‘지방’이라는 특수성을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바꿔보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서울 유명 병원들은 늘 사람으로 북적댄다. 여기저기 떠밀려 다니다 보면 대접은커녕 검사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파김치가 되기 일쑤인 경우가 있다. 우리는 환자들이 편하게, 무엇보다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하루 400여 명이 검진을 받는데 환자 동선을 고려해 전문 회사에 설계 의뢰를 했다. 은은한 간접조명, 앉는 의자까지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서비스가 좋아도 시설과 인력이 떨어지거나, 검진이 그냥 겉도는 식이라면 환자들이 찾지 않는다. 최신식 장비는 물론이고 좋은 의료진을 모셔오느라 힘도 많이 들었다.”

선 원장은 자신의 처지를 ‘헝그리 복서’였다고 했다.

“병원의 기본은 치료다. 하지만 치료로 끝내면 안 된다. 만약 우리가 환자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서울의 대형병원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 떨어져 있는 이곳이 환자들로부터 선택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을 ‘병을 치료하는 곳이자 마음까지 치료하는 곳’으로 만들자는 결론을 냈다.”

―암 병원을 둘러보았는데 특유의 ‘병원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 암 병원은 약품 냄새와 영상촬영장비에서 나오는 냄새가 있기 마련인데….

“내 코가 ‘개코’다(웃음). 기계 냄새나 병원 냄새를 없애려고 곳곳을 훑었다. 병원 카펫이 냄새의 주범인데 위생관리를 위해 어떤 약으로 얼마 만에, 또 몇 번씩 문질러야 제대로 청소가 되는지까지 연구했다. 소독약 냄새, 시끄럽게 카트 미는 소리를 들으면 병원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어야 할 환자들, 특히 암 환자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환자 최우선주의’를 내세운 그의 경영 철학은 그가 오히려 의사 출신이 아닌 금융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 의사가 아닌 게 오히려 강점

대전선병원은 선 원장의 형인 선두훈 이사장(56)과 동생인 선경훈 치과병원장(50) 3형제가 경영하고 있다. 선 원장은 미국 버클리대(경제학 학사)와 조지타운대(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씨티은행 자금부장으로 일하다 아버지 선호영 박사(2004년 작고)의 부름을 받고 고향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의 부친은 서울대 의대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정형외과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 가정집 옆 2층짜리 작은 건물에 병원을 열었다.

“1966년 20병상으로 ‘선정형외과의원’을 연 선친이 ‘병원이 힘들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간곡히 말씀하셔서 왔다. 그때가 1992년이니까 만으로 21년 전이다. 월급이 반 토막 이하로 줄어든 것은 말할 것도 없다(웃음). 처음 왔을 당시에는 시설도 고쳐야 될 부분이 많았고, 경영상으로도 산적한 과제가 많았다.”

대전선병원은 현재 900여 개의 병상을 갖추고 있다.

―의사가 아닌데, 병원의 속성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나.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고민할 수 있었다. 진료부담에서 자유로우니까 최대한 환자 입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졸졸 환자들을 따라다녔다. 할머니 환자가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을 때도 함께 이동해 보고, 기계 위에 누워보기도 하고 하염없이 환자 옆에서 의사를 기다려 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환자들의 불편사항이 하나둘씩 보였다. 예를 들어 MRI를 찍을 때 환자를 편안하게 해준다고 헤드폰을 씌우고 음악을 틀어주는데 지나치게 음량이 커 오히려 귀가 아프다는 것을 환자 체험을 통해 알게 됐다. 아무런 설명 없이 침대에 누워 의사를 기다리는 일도 얼마나 불쾌한 경험인지도 느꼈다. 간호사가 앉아서 응대하는 것보다, 일어서서 환자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것도 의사였다면 몰랐을 거다. 환자식에 부드러운 햄버거를 내놓기 위해 일본에서 직접 분쇄기까지 들여왔다.”

선병원 간호사들의 수첩. “언제 퇴원하나요” “머리가 아파요” “(담당)과가 왜 바뀌었나요” 등 환자들의 시시콜콜한 육성을 모두 적어 병원 서비스에 활용한다. 대전=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선병원 간호사들의 수첩. “언제 퇴원하나요” “머리가 아파요” “(담당)과가 왜 바뀌었나요” 등 환자들의 시시콜콜한 육성을 모두 적어 병원 서비스에 활용한다. 대전=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대전선병원에는 ‘발딱 응대’라는 게 있다. 간호사들이 환자나 보호자가 오면 즉시 일어나 응대한다는 뜻이다. 반드시 수첩을 갖고 다니며 환자들의 애로사항을 꼼꼼히 적는 것도 선 원장이 특히 강조하는 부분.

“신규 의료진이 들어오면, 꼭 하는 교육이 있다. 역할 바꾸기를 통한 ‘역지사지(易地思之)’ 교육이다. 환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의사 행동을 영상으로 찍은 뒤 보여준다. 영상을 본 의사들은 깜짝 놀란다. 나름대로 친절하게 한다고 했는데 환자가 질문을 하는데 대충 답을 하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는 모습이 보이니까 의료서비스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됐다. 간호사들도 환자와 똑같이 붕대 분장을 한 뒤, 침대에 누워 동료 간호사의 설명을 듣는 교육도 있다. 그러면서 혹시 환자가 이해할 수 없는 전문 의료용어, 특히 영어를 섞어 쓰지 않는지 서로 평가도 한다.”

○ 장밋빛 환상은 금물

―다시 의료 수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병원들이 외국인들에게만 눈을 돌리면 국내 환자들을 아무래도 소홀하게 대하게 되지 않을까, 또 의료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과장됐다는 말도 있다.

“외국인 환자를 유치할 능력이 안 되거나 준비도 안 된 병원들이 무조건 의료 수출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 오히려 외국인들에게 나쁜 인상만 준다. 우리의 경우에도 전체 검진 환자 중 외국인 비중은 1%에 불과하다. 이를 전체 질환으로 확대해 보면, 외국인 환자 비중은 그보다 훨씬 밑돈다. 외국인들만 잡겠다고 병원들이 장밋빛 환상으로 뛰어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소리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지금 한국 대형병원들은 다 적자다. 정부가 건강보험으로 병원들에 보전해주는 비용은 80%가 안 된다. (건강보험 적용 대상 질환)치료에 100원 들었는데 정부가 주는 돈이 80원이 안 된다는 뜻이다. 병원들이 장례식장으로 장사하고, 엉뚱한 부대사업 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 검진도 받고 치료도 받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을 유치한다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의료관광을 활성화한다고 나섰다. 현장에서 아쉽다고 느낀 점은 없나.

“외국인 환자들의 비자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불법체류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비자 발급이 여전히 까다롭다. 복수비자도 잘 안 나온다. 하지만 치료비를 40% 이상 선불로 냈다면 치료 목적 입국이라고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해외로 병원 시스템을 수출할 경우 한국 경제에도 이득이 많은 만큼 정부가 펀드 지원을 해주는 방안도 검토했으면 한다. 병원 수출을 하면 그쪽 인프라를 관리할 한국인들도 파견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도 늘 수밖에 없다.”

그를 만나고 서울로 오는 길에 “몸의 병도 고치지만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이 오래 뇌리에 남았다. 의료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환자 최우선주의’ 아닐까. ―대전에서

인터뷰=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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