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택균]무대에는 클로즈업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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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균 문화부 기자
손택균 문화부 기자
상반기 흥행작인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의 절정부는 초반 4분 40여 초간의 여배우 독창이다. 톰 후퍼 감독은 카메라 움직임을 최소화해 울부짖듯 노래하는 앤 해서웨이를 묵묵히 클로즈업했다. 판틴의 절망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배우의 얼굴이 스크린 가득 채워졌다. 입술 끝 작은 떨림 하나하나가 관객의 마음을 후벼 팠다.

같은 노래가 흐르는 같은 장면을 뮤지컬 무대에서는 클로즈업할 수 없다. 카메라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이다. 배우가 발산하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편집도 당연히 없다. 무대로부터 번져 나오는 에너지와 얼마나 소통하느냐는 온전히 관객 각자에게 달렸다.

뮤지컬뿐이 아니다. 유명 협연자의 이름을 앞세운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메인 연주자만 뚫어져라 집중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제2바이올린 뒷줄 왼쪽에서 세 번째 앉은 여성 연주자, 내 타입이더라.” “그래? 진작 얘기하지. 못 봤네.” 공연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다. 노래에 귀 기울이는 사람,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사람, 이야기 흐름에 신경 쓰는 사람. 정답은 물론 없다. 각양각색의 취향과 목적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며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공연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메인 출연자가 아무리 훌륭한 연기 또는 연주를 선사한다 해도 무대 위 한 구석에 틈이 생기면 좋은 공연이 될 수 없다. 2007년 4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과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 합동공연. 후반 김주원의 독무는 황홀했다. 하지만 나머지 시간 내내 맥이 빠졌다. 무슨 까닭인지 두 무용단 단원들의 움직임이 멈칫멈칫 자꾸 서로 얽혔다. 공연에서 주인공은 주역을 맡은 한 출연자일 뿐 결코 무대의 ‘주인’이 아님을 보여준 경험이었다.

그러나 할리우드를 뒤따르는 한국영화계에서는 스타 배우가 ‘왕’이다. 최근 한 TV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병헌은 “브루스 윌리스가 촬영 현장에서 감독에게 제안해 내 단독 장면을 만들어줬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감독은 두말없이 윌리스의 말을 따랐다지만 그 역시 그 장면을, 그 영화를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을까. 최근 몇 년간의 한국영화. 같은 배우들에 감독만 계속 바뀐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외형은 순조롭게 성장 중인 것으로 보인다. 공연장과 작품 수가 부쩍 많아졌고 관객도 완만하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그 성장세의 선두에 선 제작사의 관계자가 말했다. “작품 흥행을 보장하는 배우에게 회당 수천만 원의 출연료를 주는 상황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출연료를 캐물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한국 뮤지컬 시장의 상도(商道)다.”

2006년 4∼6월 연극 ‘사흘간의 비’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데뷔한 세계적인 스타 줄리아 로버츠는 회당 4300달러(약 480만 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영화 출연료는 편당 2000만 달러(약 224억 원). 상도란 아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거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
#뮤지컬#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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