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철 코치 “야구대물림, 말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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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8월 2일 07시 00분


KIA 이순철 수석코치(왼쪽)의 아들 이성곤(연세대)은 8월 26일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의 문을 두드린다. 이성곤은 아버지처럼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이 돋보이는 선수다. 내년 시즌 부자는 함께 프로야구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을까. 이 코치와 이성곤이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해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KIA 이순철 수석코치(왼쪽)의 아들 이성곤(연세대)은 8월 26일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의 문을 두드린다. 이성곤은 아버지처럼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이 돋보이는 선수다. 내년 시즌 부자는 함께 프로야구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을까. 이 코치와 이성곤이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해 환하게 웃고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KIA 코치 이순철-성곤 등 ‘야구인 父子’들의 살아가는 법

아들의 삶에서 가장 큰 거울이자, 스승은 아버지다.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늘이 워낙 크면, 아들은 그 그늘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가업을 잇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대(代)를 이은 정치인들이 많은 요즘, 아버지를 넘어선 아들을 보기 드문 것도 그래서다. 야구계에도 ‘부자(父子)야구인’이 제법 많지만, 이제까지 아버지보다 큰 명성을 쌓은 아들은 찾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아들이 자신을넘어서길 바라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순철(52·KIA 수석코치)-성곤(22·연세대) 부자에게서 ‘야구 부자’로 살아가는 애환을 들어봤다.

스타플레이어 ‘TV속 아버지’가 꿈
‘야구인 아들’ 부담? 난 듣기 좋아요
꼭 프로 가서 아버지 넘을거에요


● 아버지를 보며 꿈을 키운 아들

성동초등학교 5학년 때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이성곤은 우투좌타의 내야수다.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왼손으로 타격을 했다. TV에 나온 아버지의 타격폼을 흉내 내다가 그렇게 됐다. 무작정 아버지를 닮고 싶은 마음에, 마치 거울 속에서처럼 우타석에 서 있는 TV 속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였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이성곤은 ‘이순철의 아들’이란 말을 달고 살았다. 어떻게 보면 큰 부담일 수밖에 없는 환경. 그러나 이성곤은 “어렸을 때부터 누구 아들이란 말, 그 소리를 듣는 게 가장 기뻤다”고 얘기했다.

아들은 말한다. “아버지가 아마추어 때 태극마크를 다셨기에 나도 청소년대표가 되고 싶었고, 꿈을 이뤘다. 연세대에 진학한 것도, 연세대에서 주장을 맡은 것도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프로 지명을 받아 프로에서 아버지가 쌓은 것과 같은명성을 하나씩 이뤄가고 싶다.”

‘아버지덕에 야구한다’ 큰 상처
오해 할까봐 아들 감독도 못 찾아가
아들아, 프로행도 아빠 믿지마라


● 아들에게 미안한 아버지

아버지는 처음에 야구를 하겠다는 아들이 탐탁치 않았다. 쉬운 길이 아니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한다면 골프나, 아내가 했던 승마를 택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들의 꿈은 오로지 야구선수였고, 이를막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한 가지있다. 학부형으로서 아들에게 해준 게 거의 없다. 괜한 오해를 살까봐 아들을 가르치는 코치나 감독을 찾지 않았다. 아들의 뛰는 모습이 정 보고 싶을 때는, 담장 넘어 멀찌감치 떨어져서 ‘도둑 관찰’을 하고는 조용히 돌아섰다. 아버지는 ‘이순철의 아들’로 이성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 부자 사이에 드리워졌던 장막

아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는 원정이다 뭐다 해서 함께 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야구 얘기를 해도, 학교에서 배운 것과 내가 한두 마디씩 조언해주는 것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성곤이가 벽을 쳐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는 아버지는 “그러다 대학교 1학년 때 완전히 죽을 쓰고, 1할대를 치다가 2학년 때부터 조금씩 좋아지고, 그 다음부터 깊이 있는 야구 얘기를 하게 됐다. 이제는 자주 못 만나니, 문자나 영상을 주고받으면서 야구 얘기를 나눈다”고 밝혔다.

아들도 “요즘은 아버지와 야구 얘기를 하는 게 어느 때보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야구가 부자의 정(情)을 더 돈독하게 해주고 있다.

● 아들아, 아직은 멀었다!

올해 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도루왕을 차지했던 이성곤은 하계리그에선 6할대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성적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방망이 소질은 타고났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러나 수비, 특히 송구 동작에서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게 부자의 공통된 생각이다. 아버지는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부족하다. 프로에서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버지는 말한다. “대학 4학년 들어 성적이 나고 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니 이제 시작도 하지 못했다. 정말로 야구선수로서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더 절실해지고, 절박해져야 한다.”

● 아들이 프로선수의 꿈을 이룬다면…

대학 졸업반인 이성곤은 8월 26일 예정된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의 문을 두드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프로 지명을) 못 받을 줄 알았다”는 말에서 이번 드래프트를 앞둔 아버지의 바람이 살짝 묻어난다. 그러나 아들 앞에서 아버지는 더욱 냉정하다. 아버지가 대선수 출신인 데다 현직 코치 신분이지만, 드래프트에서 도움을 줄 수도 없고 그럴 마음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모든 것은 아들의 실력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프로팀의) 지명을 못 받는다면 2년간 상무나 경찰청에서 야구를 더 해보고, 만약 그 뒤에도 지명을 못 받는다면 깨끗이 야구 유니폼을 벗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프로팀의 지명을 받는다면’ 이성곤은 KIA가 아닌 다른 팀이었으면 한다. “KIA는 꼭 가고 싶은 명문팀이긴 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갔다’는 말로 내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게 싫다”는 당찬 마음가짐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온다면 내가 팀을 나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부자는 말한다. “상상 속에선 같은 유니폼을 입어도, 실제로는 어렵지 않겠느냐?” 어쩌면 같은 길을 걷는 부자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트위터 @kimdo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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