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아베 총리, 거울을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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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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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국제부장
하종대 국제부장
최근 일본을 다녀왔다. 아사히신문과 동아일보의 연례 교류에 따른 방문이었다. 양사의 상호 교류는 한일 수교 직후 시작돼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모습은 6년 전 방문했을 때와 똑같이 한국과 비슷했다. 한국보다 거리가 더 깨끗하다는 점을 빼면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모두 외국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간판의 글자를 한글로 바꾸면 곧바로 한국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생김새도 별 차이가 없다. 양국민의 DNA 염기서열 차이는 0.04%도 안 된다. 서양 사람은 외모만으로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문화의 차이는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밥그릇을 들고 먹는 것은 금기다. 그릇을 든 채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것도 천하게 여긴다. 하지만 일본인에겐 이게 더 자연스럽다. 술잔이 완전히 비기 전에 술을 따라주는 것도 우리와 다르다.

언어 습관도 다르다. 심지어 같은 한자 용어에 대한 어감이 크게 다른 경우도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달 29일부터 ‘일본 전문가가 본 우경화(右傾化)’에 대한 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본보가 ‘우경화’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데는 상당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야 했다.

한국인에게 ‘일본 우경화’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의 역사를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미화하는 쪽으로 가는 걸 말한다. 이 중에서도 천황(일왕)제 부활을 꿈꾸고 자국 이익을 위해 이웃 국가도 침략할 수 있다는 사람을 ‘극우주의자’라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 및 신사 참배, 평화헌법 개정 추진 등은 우경화의 대표 사례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극우(極右)’는 물론이고 ‘우익(右翼)’이나 ‘우경화’란 용어조차도 매우 불편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일본에서 우익이란 극단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배외(排外)주의자를 지칭하는 말로 대표적인 혐한(嫌韓)단체인 ‘재특회’(재일·在日의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회) 정도를 말한다고 한다.

따라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우익으로 부르기엔 부적합하고 넓게는 보수파, 좁게는 매파 보수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 언론은 실제로 자민당을 보수 진영으로, 민주당을 진보 진영으로 설정하고 아베 총리를 비롯한 현 집권세력을 ‘매파 보수’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양국민이 느끼는 어감 차이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내용이다. 아베 내각의 요인들이 참배한 야스쿠니(靖國)신사는 단순히 246만여 전몰장병을 모신 곳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1978년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을 순난자(殉難者)로 규정해 은근슬쩍 합사(合祀)해 놓았다. ‘핵심 전범’까지 함께 추모하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 아베 내각은 군국주의를 연상시키는 “천황 폐하 만세”를 공공연히 외치고 이웃 국가 침략을 ‘침략’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웃 국가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일본 정부는 알아야 한다.

이번 방문 과정에서 아사히신문 기자 가운데엔 이웃 국가와의 선린 우호를 중시하는, 합리적인 애국자가 많이 있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의 신사 참배와 역사 왜곡,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웃 나라와의 공영(共榮)이 목표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일본이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상호 공영을 추구한다면 한일 간에 협력 공간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일본이 최근 경제의 활력을 되찾으면서 ‘잃어버린 20년’을 탈출하는 것을 환영하고 축하한다. 국제적 위상도 드높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웃 국가와 갈등하면서 세계 리더 국가가 될 수는 없다. 아베 내각은 어느 것이 진정으로 ‘강한 일본’을 만드는 길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태평양전쟁 패배의 역사를 거울삼아야 한다. 일본이 이웃 국가와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통해 세계 역사에 공헌하는 ‘강하고 큰 나라’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일본#아베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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