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버스를 못타는 12살 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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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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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몇 해 전 서울 송파구의 A 초등학교에서 훈이를 만났다. 6학년인데 한글은커녕 숫자도 못 읽었다. 이름은 마지막 글자(훈)만 외워 그리는 수준이고, 번호가 세 자리 이상인 버스는 혼자 타지 못했다.

지적 장애 어린이가 아니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부모가 어린 훈이를 가르치지 못해서였다. 1, 2학년 때 담임들은 훈이의 기초학력 미달을 방치했다. 10세 이후로 훈이는 스스로 까막눈이라는 게 부끄러워 대충 아는 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저 학년만 올라갔다.

다행히 6학년 때 새로 부임한 교장이 훈이와 같은 아이들을 방과후에 따로 가르쳤다. 두 달 만에 교과서를 읽는 수준이 됐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훈이는 영원한 낙오자가 됐을 터이다.

정부가 올해부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중고교는 과목이 줄고, 초등학교는 아예 없어진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국 차원의 학력을 측정하기 위해 1959년 학력고사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통계용도로 전체 학생의 1∼3%를 골라 치르다 지난 정부가 ‘기초학력 미달 제로 플랜’을 도입하면서 2008년 전수조사로 바뀌었다.

이후 일부 학교가 성적을 높이려 부정행위를 저지르고, 시험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는 부작용이 생겼다. 아이들을 과도한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이 시작됐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물씬 풍기는 ‘일제고사’라는 근거 없는 용어가 나오게 됐다.

사실은 다르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아니다. 우수학력,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의 4단계로 분류할 뿐이다. 국가 차원의 교육 커리큘럼이 적정하게 짜여 실행되는지 가늠하는 기능도 한다. 제도의 취지와 구조를 이해한다면 학업성취도 평가가 누명을 쓰고 있다는 측은지심이 들 판이다.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를 학교마저 잡아주지 못하면 이들은 제2, 제3의 훈이가 된다. 특히 초등학교는 담임이 아니면 학생의 상태를 알 수 없다. 학생 개개인의 기초학력 미달은 교육 당국이 포착하고 구제해야 한다. 기초학력 미달자가 지나치게 많은 학교는 원인을 따지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이를 위한 도구다. 초등학교 학업성취도 평가 폐지에 대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반대하고 나선 이유다. 교총은 기초학력 형성 시기인 초등학교에서 국가의 의무인 학생 학업성취 파악 및 향상의 의무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중차대한 문제를 새 정부의 국정과제라는 이유만으로 여론수렴 없이 강행하는 건 더 문제다. 적어도 대안이라도 있어야 한다. 시도별 진단고사를 기초학력 미달 지원에 연동하거나, 학업성취도 평가를 학교가 자율적으로 활용하게 하는 식의 대책이 절실하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지적 장애#생활고#학업성취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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