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에 기업집단局… ‘재계 저승사자’ 부활

  • Array
  • 입력 2013년 4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 8년전 폐지 조사국 이름 바꿔 설치 추진… 자산 5조 넘는 대기업 62곳 담당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며 대기업 조사를 전담했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국이 폐지된 지 8년 만에 ‘기업집단국’이라는 명칭으로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22일 “경제민주화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공정위 내부에 대기업 전담조직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자산 5조 원 이상인 대기업집단(그룹) 62곳이 신설 조직의 주요 타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래 공정위원장도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현행 조직과 인력으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등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조사국, 2005년에 없어져

기업집단국의 전신(前身)인 공정위 조사국은 1992년 생겼으며 산하에 3개 과를 뒀다. 당시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형 불공정 거래나 다른 일반 부서가 벌이기 힘든 대규모 기획, 직권조사를 주로 맡았기 때문에 ‘대기업 전담부서’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조사국은 공정위 내부적으로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경찰청 특수수사과와 위상이 비슷했다. 2005년 조사국이 폐지된 것도 대기업을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경제계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

신설되는 기업집단국의 가장 시급한 업무는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이 △순환출자 규제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 △지주회사 규제 등 지배구조와 관련된 정부의 규제를 지키는지를 점검하는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추진되는 기업집단국은 예전 조사국보다 강력한 조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 조사 업무에 재벌 관련 정책기능까지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정·관리, 지주회사 규제 등 재벌 정책은 경쟁정책국이, 조사는 시장감시국과 카르텔조사국이 각각 맡고 있다. 공정위는 기업집단국에 정예인력 30∼40명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집단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공정위 전체 인력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소 엇갈린다. 공정위는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업무량이 크게 늘어난 만큼 전체 인력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와대와 안전행정부는 “정원 내에서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최대한 검토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 “경제민주화 바람 틈타 몸집 불리려는 의도”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대기업 전담조직이 부활하면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과 “안 그래도 경제민주화가 과도하게 추진되는 상황에서 기업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서는 모양새다. 재계 일각에서는 “언제는 투자를 열심히 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우리를 범죄집단 보듯이 한다”는 격앙된 반응도 나온다.

정부는 대기업 전담 부서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일단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공정위 고위 당국자는 “과거 조사국처럼 대대적으로 대기업의 비리를 파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경제민주화 공약의 유기적이고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부서 간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안에서는 내부 인력을 총동원해도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대기업들의 불공정 행위가 은밀하고 교묘해지고 있지만 지금은 조사 기능이 부서마다 흩어져 있어 조사와 적발에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외부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경제민주화 바람을 틈타 공정위가 자신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공정위 조사국에 몸담았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공정위가 여러 차례 조직을 바꿨지만 명칭만 바꿨지 하는 기능은 항상 똑같았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공정위에 기업집단국이 신설되면 대기업에 대해서만 과도한 감시가 이뤄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특정 집단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조직을 만드는 것은 이미 의도가 있다는 뜻”이라며 “과속 단속을 하겠다며 에쿠스 이상 차량만 집중 단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떤 행위에 대한 규제를 할 때 특정 집단을 겨냥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장원재 기자·세종=유재동 기자·김용석 peacechaos@donga.com
#공정거래위원회#기업집단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