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10대 그룹이 앞장서 일감 몰아주기 줄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9일 03시 00분


현대자동차그룹이 물류와 광고 분야 일감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이 독점적으로 맡았던 국내 일감의 절반, 6000억 원어치 분량을 중소기업에 발주하거나 경쟁입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건설과 시스템통합(SI) 분야도 개방할 계획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중소기업이 해당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막고 국제경쟁력도 갉아먹는다. 한국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SI 분야에서 오라클이나 SAP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오지 못하는 건 관련 기업이 내부 거래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계열사 일감을 싹쓸이해 ‘땅 짚고 헤엄치기’로 사업을 하니 국제경쟁력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세금 없는 편법 증여나 상속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1년 설립된 이 회사는 현대차의 물류 업무를 도맡아 10년 만에 매출이 1984억 원에서 7조5000억 원으로 38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그 덕분에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부회장은 20억 원의 출자금으로 2조여 원의 수익을 얻었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동생 회사에 극장 광고영업 독점권을 주었다. 롯데그룹은 신격호 회장의 배우자와 자녀 등이 대주주인 회사에 극장 내 매장 운영을 몰아줬다. 최근 감사원이 법을 소급 적용해서라도 이들에게 증여세를 물려야 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47개 대기업집단의 광고·SI·물류·건설 등 4개 분야 내부거래 규모는 27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재계 리더인 10대 그룹의 비중이 17조5000억 원이나 된다. 만약 이 물량을 외부에 개방한다면 중소기업들은 많은 일감을 얻게 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동반성장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다. 다만 입찰이 형식에 그치거나 물량 맞바꾸기 방식으로 일감이 다른 대기업 계열사로 간다면 상생의 효과는 줄어든다. 중소기업들이 실제로 일감을 따낼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공정 경쟁을 해치는 일감 몰아주기는 금지하되, 경영상 필요한 수직계열화까지 막아선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내부 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가 부당한 이익을 얻거나 시장을 독점하는 것만 규제하고 기업 경쟁력을 위해 필수적인 부품 조달이나 영업기밀 보호를 위한 거래는 기업의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 ‘대기업 때리기’ 바람을 타고 무리하게 내부 거래를 규제하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할 수 있다.
#10대 그룹#일감 몰아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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