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안영식]‘코리안 몬스터’의 필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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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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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 스포츠부장
안영식 스포츠부장
‘하수(下手)의 샷은 걱정한 곳으로 날아가고 고수(高手)의 샷은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이 말에 고개가 끄떡여지는 주말골퍼가 많을 것이다. 연습장에선 곧잘 치는데 실전에선 헤매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퍼팅 입스(Yips·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1m 안팎의 짧은 퍼팅을 놓치는 고질병) 원인은 바로 자신감 결여다.

요즘 스포츠 기사에는 유난히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LA 다저스)의 쾌투, 프로농구 모비스의 20연승(정규시즌 13연승+플레이오프 3연승+챔피언결정전 4연승) 우승은 자신감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LA 다저스 코칭스태프의 류현진 평가 멘트에도 자신감(Confidence)이 핵심단어다. 돈 매팅리 감독은 “류현진은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있을 때도 삼진으로 이닝을 마치는 데서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성패를 가르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축구의 페널티킥(승부차기)이다. 공에서 골키퍼까지 거리는 11m. 키커가 시속 90∼100km(성인 남자 축구선수의 평균 슈팅 속도)로 공을 찰 경우 골라인 통과 시간은 0.5초, 골키퍼의 반응속도는 0.6초다. 수치상으로는 골키퍼가 막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페널티킥 성공률은 80% 정도다. ‘반드시 넣어야 된다’는 부담감이 자신감을 떨어뜨려 실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8강전 한국-스페인의 승부차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로 나선 호아킨 산체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선축한 한국이 네 번째 키커까지 모두 네트를 흔들어 산체스가 느낀 압박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킥 직전 주춤거린 산체스는 어정쩡한 슛을 했고 이미 슛 방향을 간파한 수문장 이운재는 왼쪽으로 몸을 날려 펀칭해냈다. ‘현시대 최고의 축구 선수’ 메시와 ‘무회전 킥의 달인’ 호날두도 실패하는 걸 보면 페널티킥은 골키퍼와의 기싸움에서 결판난다.

연애도 취업도 사업도 자신감이 없으면 힘들다. 그런데 자기계발 서적 몇 권 읽고 명상수련 한다고 자신감이 뚝딱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고 퍼팅 성공 여부는 반드시 눈이 아닌 귀(공이 홀컵에 떨어지는 소리)로 확인하라.’ 골프레슨책에 나와 있는 퍼팅 입스 치유책이다. 쉬워 보이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벤 호건, 톰 왓슨 등 대가(大家)도 몇 년을 쇼트퍼팅 트라우마에 시달렸을까.

필자가 권하는 퍼팅 입스 탈출 방법은 동반자의 컨시드(일명 OK)를 사절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퍼팅 입스 치료 중”이라며 동반자의 선의를 정중히 거절하자. 물론 그날의 스코어와 스킨 상금에 대해선 마음을 비워야 한다. 훗날 ‘싸움닭’을 만났을 때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짧은 거리도 반드시 퍼팅 홀아웃 하자. 그러다 보면 결핵에 걸린 것을 몰랐는데 자연 치유돼 있듯 퍼팅 입스도 사라지게 된다.

류현진은 “박찬호 선배의 메이저리그 아시아투수 최다승(124승) 기록을 넘고 싶다”며 입단식부터 자신감을 보였다. 이후 “12승 내지 13승을 거두면 신인왕이 되지 않겠느냐”(시즌 개막 인터뷰), “홈런 안 맞았으면 100점인데 오늘 내 점수는 80점이다”(메이저리그 첫 승 인터뷰), “다음 경기에는 실점하지 않도록 신경 쓰겠다”(2승 인터뷰). ‘괴물’의 자신감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마치 ‘한 번 실수는 병가(兵家)의 상사(常事)’가 좌우명인 듯 홈런과 안타를 내줘도 표정이 무덤덤한 류현진은 20일 볼티모어전에서 3연승에 도전한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구석을 찌르는 코너워크로 상대 타자를 돌려세우는 류현진의 진정한 필살기는 현란한 체인지업이 아니라 굳건한 자신감이 아닐까.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
#자신감#류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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