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마라톤 폭탄테러]“No More…” 숨진 소년의 미소 미국 대륙을 적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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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탄테러 참사현장에 꽃핀 인간애

미국 보스턴 마라톤대회 폭발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는 데 신중했던 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이를 테러 사건으로 공식 규정했다. 중국인 사망자까지 나오면서 이번 사건은 미국을 넘어 14억 중국인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피해를 줄이는 데 일조한 시민과 자원봉사자의 헌신은 작지만 빛나는 ‘보스턴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감동을 전하고 있다.

○ 현장의 작은 영웅들

미국의 대형 사고와 재해 때마다 피어난 헌신과 인간애는 보스턴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번 사상자의 치료를 담당한 의사들은 현장에서 지혈 등 응급조치와 이송이 조금만 늦었어도 사망자는 더욱 늘어났을 것이라며 ‘현장의 작은 영웅’들을 칭송했다.

사건 당일인 15일 미국 주요 언론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카우보이모자를 쓴 채 부상자를 휠체어에 싣고 질주한 칼로스 아레돈도 씨(53)의 사진이 실렸다. 그는 이라크전에서 20세의 나이로 사망한 아들을 기리기 위해 이날 ‘애국자의 날’을 맞아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했다. 둘째 아들도 형의 사망에 상심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픈 사연을 갖고 있었다.

결승선 근처에서 성조기를 나눠주던 그는 폭발사고가 발생하자 곧바로 아비규환의 현장에 뛰어들어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제프 바우먼 씨(27·코스트코 점원)도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주변에 버려진 스웨터를 찢어 지혈을 한 뒤 병원으로 빨리 이송될 수 있도록 도왔다.

수술을 마친 뒤 다음 날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바우먼 씨는 잘려나간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으며 오열했다. 바우먼 씨는 비극의 희생자가 된 데 분했는지 연신 욕설을 쏟아냈다. 곁에서 간호를 하던 부친은 “아레돈도 씨가 아니었으면 너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며 아들을 위로했다.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으로 폭발음에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현장으로 달려가 부상자들을 도운 존 믹슨 씨도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폭발 직후 현장을 떠나라는 경찰의 지시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 다시 돌아와서는 주변의 생수와 음료수 박스를 모두 치울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던 리자 라본테 씨(여) 등 자원봉사자들의 헌신도 눈길을 끌었다.

보스턴 폭발 사건 부상자 치료에 참여한 의료진을 대표해 매사추세츠종합병원(MGH)의 조지 벨마호스 외과의사는 이날 병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장에서 조금만 조치가 늦었어도 더 많은 사망자가 있었을 것이다. 더이상의 사망자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참사 속에서도 피어나는 숭고한 인간애도 미국 시민사회의 힘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병원에서 돌려보내야 할 정도로 헌혈자가 쇄도했다. 적십자사 측은 동시에 헌혈자가 너무 많이 몰리자 “지금 당장은 혈액이 충분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헌혈 지원자가 계속 몰리자 한 시간 뒤 또다시 트위터를 통해 “지금 말고 다음에 헌혈해 달라”고 당부하고 헌혈 대기자 명단까지 작성하기도 했다.

사고 현장 인근 식당과 주민들도 잇달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무료 식사와 쉴 장소를 제공하고 무선랜(Wi-Fi) 사용, 휴대전화 충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더이상 사람들을 해치지 마세요.”

8세 아들 마틴을 먼저 떠나보낸 아빠 빌 리처드 씨의 글도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성명에서 “우리가 마틴을 그리는 것처럼 여러분도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특히 마틴이 과거 천진난만한 얼굴로 평화를 호소하는 사진을 전 담임 교사가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마틴은 ‘더이상 사람들을 해치지 마세요(No more hurting people). 평화(PEACE)’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이 페이스북 포스팅에는 20만 명 이상이 ‘좋아요’ 표시를 하면서 그를 추모했다.

레스토랑 매니저 크리스틀 캠벨 씨의 부모는 의사의 착각으로 무사한 줄 알았던 딸의 죽음을 뒤늦게 확인하는 아픔을 겪었다. 캠벨 씨의 부모는 딸이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켐벨 씨가 다리 수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이라는 의사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기쁨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회복실에 누워 있던 환자는 딸이 아닌 딸의 친구 캐런 랜드 씨였던 것.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의사가 랜드를 캠벨로 착각해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다”고 전했다.

다시 딸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가족은 경찰이 건넨 사진을 보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12시간 전 사망했지만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진 속 인물은 그토록 찾던 딸이었다. 캠벨 씨의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 없다”며 흐느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한편 공식 발표된 사상자는 사망자 3명과 부상자 176명 등 총 179명이지만 CNN은 180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스턴=박현진·워싱턴=정미경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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